평범한 회사원인 40대 직장인 A씨에게 미술관 관장은 부잣집 사모님의 이미지였다. 잘 지은 미술관 건물을 누비며 값비싼 그림을 과시하듯 걸어놓은 사람. 그가 갖게 된 이러한 미술관장의 이미지는 왜곡된 미술품 컬렉터의 이미지와 뒤섞인 듯했다. 갤러리 혹은 사립미술관 관장 중에는 재력 있는 ‘사모님형’ 관장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공립미술관의 경우는 다르다. 공립미술관이란 국립 혹은 시립, 또는 지자체가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공공성’을 우선시한다.
최근 공립미술관 관장으로 참신한 새 인물들이 대거 등판했다. 최근 부산시립미술관장으로 내정된 기혜경 전 서울시립북서울미술관 운영부장이 있고, 광주비엔날레와 한국국제교류재단 등에서 활약한 안미희 경기도립미술관장도 ‘실무형 관장’으로 호평 속에 임명됐다.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과 경기도미술관 관장을 거쳐 대구미술관을 이끌고 있는 최은주 관장이나 국내외 굵직한 전시 경력의 백지숙 서울시립미술관장, 서울시립미술관과 OCI미술관 등에서 경력과 실력을 다진 최정주 제주도립미술관장도 그렇다.
미술계에서는 이를 두고 미술관장의 ‘세대교체’라고도 말한다. 올해는 국립현대미술관이 50주년을 맞은 해이니 우리나라의 미술관장의 역사도 어느덧 반세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한번 물어보고 싶다. 관장이란 무엇인가? 관장은 어떤 사람이어야 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 질문 말이다.
국가대표급 공립미술관인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공모 요건을 보자. 미술 관련 분야에 10년 이상 재직한 경력이 있거나 관련 분야 박사학위 소지 이후 그 분야에서 7년 이상 경력이 있는 자를 ‘경력요건’으로 꼽는다. ‘실적요건’은 이렇다. 공·사립미술관 등 국내외 문화예술기관의 관리 및 경영과 관련해 5년 이상의 경험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 전시회·비엔날레 등 국내외 문화예술행사에서 10년 이상의 큐레이팅 경력을 객관적으로 입증할 수 있는 자 등으로 규정돼 있다.
이런 사람들 중 ‘엄선’하는 국립현대미술관장의 경우 국가대표급 미술관의 수장이라지만 직위는 ‘임기제 고위공무원 나급’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관할 범위가 넓어지고 조직이 커져 아시아 최대 규모를 내다보는 상황이 되자 정부는 관장직을 차관급으로 상향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직급뿐 아니라 3년짜리 임기도 짚어볼 문제다. 보통 미술관은 최고 2년 앞서 다음 전시를 준비하기에 새로 임명된 관장은 그야말로 전임 관장의 ‘뒤치다꺼리’로 임기의 절반을 보내기 일쑤다. 국립현대미술관을 거쳐 간 18명의 관장 중 임기를 다 채운 관장은 8명에 불과했다. 영국 국립미술관인 테이트미술관을 이끈 니컬러스 서로타 관장이 27년간 재임하며 미술관의 정체성을 다진 것과 비교된다. 그나마 다행히도 초창기 공립미술관장이 공무원 위주로 미술계 현장을 파악하지 못하던 것이나 작가 출신 관장이 미술관을 이끌며 파벌을 형성하던 폐단은 사라졌다. 하지만 여전히 지방 공립미술관장은 지역 미술인들의 눈치를 보고, 지자체 공무원과 시·도의원의 눈치를 봐야 한다. 관장이 신경 쓸 사람은 그들이 아니라 예술을 향유할 국민과 시민들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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