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 대한 탄핵절차 가이드라인을 규정한 결의안을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이러한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정부에 대해 조 바이든 전 미국 부통령 아들의 우크라이나 내 과거 비리 행적을 조사해달라고 요구한 통화내역이 행정부 안의 내부고발자에 의해 폭로되면서 시작됐다. 민주당은 트럼프 대통령의 통화가 바이든 민주당 후보를 끌어내려 2020년 대선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시도라고 보고 공식적으로 탄핵을 위한 절차를 구체화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민주당의 탄핵 시도는 그의 국정운영에 대한 민주당의 오랜 불만에 기인했다. 이러한 불만은 미국이 중요한 가치로 여겨온 신념들을 트럼프 대통령이 여지없이 무너뜨리는 것에 대한 민주당의 반발에서 야기됐다. 이 중 하나가 바로 ‘미국은 누구의 나라인가’라는 문제와 관련돼 있다.
전통적으로 미국은 자유·평등·제한정부·법치 등 민주적 이상을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두 미국인으로 수용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영국계 백인이 미국에 먼저 정착해 식민지를 개척하고 이후 독립 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이 건국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19세기에 접어들어 이민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미국은 미국인의 기준을 ‘영국계 개신교도 백인’이라는 혈연과 종교보다, 다양한 이민자로 구성된 다원적 사회 구성에 걸맞게 미국의 건국정신과 민주적 이념 등을 중심으로 정의해왔다. 유럽계 핏줄 혹은 개신교적 가치를 중심으로 미국인을 정의해야 한다는 백인의 반발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영국계 백인 우선주의나 백인 민족주의의 파편적 일회성 반발 운동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더구나 대통령이 나서서 노골적 혹은 암묵적으로 백인 민족주의를 대변하는 일은 그 전례가 없었다.
그런데 1970년대 이후 유럽계 이민자와는 달리 미국 사회에 동화되기 어려운 남미와 아시아계 이민자가 증가하면서 민주적 이념을 중심으로 미국인을 정의하던 통념이 도전에 처하게 됐다. 이와 함께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백인들은 소수인종과 이민자들에게 돌아가는 ‘부당한’ 정부 복지혜택으로 자신들이 ‘당연히’ 받아야 할 애국 시민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게 됐다. 그 결과 세계화 및 개방적 이민정책이 수정돼야 한다고 믿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미국 백인, 특히 저소득·저교육 블루칼라 백인들의 불만과 불안은 다원주의에 대한 신념이 강한 민주당은 물론 이민자를 통해 기업운영에 필요한 인력을 채워온 친기업 공화당 정치인에게도 제대로 전달될 수 없었다. 그 사각지대를 이용해 트럼프는 백인들의 누적된 불만과 불안을 포착하고 반이민과 반세계화를 내세우면서 블루칼라 백인들의 지지를 흡수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었다. 이후 반(反) 이민노선을 고수하며 백인 결집정책을 통해 차기 대선에 임하고 있다.
2020년 미국 대선은 트럼프 대통령이 물꼬를 튼 백인 우선주의가 지속할 것인지 그리고 지속한다면 그 강도는 어떨 것인지를 시험할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와 함께 보수적 백인 유권자의 우려를 반영한 미국의 일방적 동맹관계 훼손과 국제제도의 파괴 경향이 더 강화될 것인지도 가늠해보는 계기가 될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민주당이 과연 사회적 소수를 배려하는 ‘정치적 올바름’의 노선에서 잠시 전략적으로 벗어나 블루칼라 백인의 생활이슈에 주목해 이들의 지지를 회복하는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을지도 검증될 것이다. 민주당의 이러한 방향전환이 성공해 대선에서 승리할 것인지, 승리한다면 미국 우선주의의 중단과 정상상태로의 역전이 귀결될 것인지, 아니면 미국 우선주의가 이미 불가역적 항로를 따라 이미 출항해 뉴노멀이 됐는지 여부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미래뿐만 아니라 미국발 국제정치의 향후 진로가 재규정되는 선거가 바로 2020년 미국 대선이며, 따라서 그 결과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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