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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프는 꿈이자 감사함 그 자체...내년엔 철인 3종 경기 도전"

'전국장애인체전 금메달' 한정원씨 인터뷰

6년전 교통사고로 왼쪽다리 일부 절단

유튜브 영상 보며 독학으로 골프 배워

의족 끼운채 평균 220야드 장타 '펑펑'

세계장애인선수권 제패 등 월드스타급

"장애 이후엔 도전할 이유부터 생각

골프 정식종목 될 패럴림픽도 정복"

‘의족골퍼’ 한정원씨의 스윙 자세. 힙 턴과 몸통 스윙 위주의 맞춤형 스윙을 독학으로 익혔다.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퍼트 라인을 살피는 한정원씨. /사진제공=대한장애인체육회


어떤 이들에게 여가활동 또는 업무의 연장이기도 한 골프가 다른 어떤 이에게는 특별한 꿈이자 감사함 그 자체다.

용인 초당중 체육교사인 한정원(49)씨는 “골프는 저에게 꿈이다. 골프를 통해 감사의 의미를 다시 깨우치기도 했다”고 한다. 한씨는 학교 밖에서는 장애인골프 국가대표라는 또 다른 삶을 살고 있다. 지난 2013년 끔찍한 사고를 당하기 전까지는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삶이다. 지난달 전국장애인체육대회(전국장애인체전)에서 골프 금메달을 딴 한씨를 20일 경기 광주의 골프용품 업체 두미나 본사에서 만났다. 이 회사는 한씨의 클럽 샤프트 일체를 후원하고 있다.

골프채를 잡은 지 이제 겨우 4년여지만 베스트 스코어가 76타(시니어 티잉 구역 기준)일 정도로 한씨는 수준급 실력을 자랑한다. 골프 스윙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왼쪽 다리가 온전치 않은 그는 의족을 끼운 채 드라이버 샷으로 평균 220야드를 너끈히 날린다. 지난해 1만여명이 참가한 아마추어 여성 장타대회에서 비장애인들과 겨뤄 당당히 5위에 오르기도 했다. 2016년 일본장애인오픈대회 준우승, 지난해 호주절단장애인대회·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 우승 등 장애인골프에서는 ‘월드스타’급이다. 미국 미시간주에서 열렸던 세계장애인선수권 때는 장타를 앞세운 시원한 플레이로 ‘로켓걸’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당시 현지 협회 임원은 “북한에 로켓맨(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붙였던 별명)이 있다더니 한국에는 로켓걸이 있었네”라며 한씨를 치켜세우기도 했다.



한씨에게는 왼쪽 다리 일부가 없다. 무릎도 10㎝만 남아 있다. 교직 12년 차에 연수를 갔다가 중앙선을 침범한 차량이 그가 탄 버스를 덮치는 바람에 크게 다쳐 무릎 아래를 절단해야 했다. 아직도 당시를 떠올리면 한씨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다. “사고 뒤 중환자실에서 긴급하게 수혈을 받을 때 환상을 봤어요. 아주 큰 한 사람이 아이의 손을 잡고 있는 뒷모습이었는데 아이의 다리 하나가 없더라고요. 수술 뒤 일부가 잘려나간 제 다리 모양을 보니 환상 속 아이의 다리와 똑같은 거예요.” 의사는 3년 안에 걷기는 힘들 거라고 했지만, 한씨는 지독한 의지로 6개월 만에 의족을 끼우고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마뱀 꼬리처럼 다리가 다시 자라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병실에서 봤던 환상을 떠올렸다. 잃은 다리를 돌려달라고 울부짖던 한씨는 “지금 이 모습 이대로 살아갈 수 있는 계획을 보여달라”는 새로운 기도를 시작했다. 그 후 만난 게 골프였다. 휠체어 테니스·조정 등 다른 운동을 했다가 무릎 피부 염증 등 부작용 때문에 그만둔 그는 의사의 권유로 2015년 난생처음 골프연습장에 갔다. 한두 달 레슨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대부분 독학이었다. 유튜브 영상으로 스윙을 배웠고 골프 룰은 책으로 공부했다. 왼쪽 다리에 가해지는 하중을 최소화하기 위해 골반과 몸통 회전을 최대한 이용하는 스윙을 익혔다. 출근 전 1시간여와 퇴근 후 4시간여씩 매일 5시간 이상 골프 연습과 웨이트트레이닝·러닝에 매달렸다. 훈련 강도를 높일수록 심해지는 환상지통(절단돼서 없는 신체 부위에 느껴지는 통증)도 기꺼이 감수했다. 주말에는 남편 등 가족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를 구경 가 이승현·장하나 등 좋아하는 선수들을 응원하며 힘을 얻었다.

그렇게 준비해 나간 국제대회에서 한씨는 상보다 더 큰 것을 얻었다. 의족도 없이 한 발로 코스를 누비는 외국 선수와 장애로 오히려 삶이 더 가치 있어졌다고 말하는 사람들에게서 신선한 자극을 받은 것이다. “호주에서 만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더라고요. 비장애인일 때는 매사에 내가 그 일을 할 수 없는 이유를 먼저 따져봤다면 장애를 가지고부터는 할 수 있는 이유, 그래도 도전해볼 만한 이유부터 생각하게 됐다고요. 이 말을 수첩에 적어놓고 지금도 수시로 펼쳐봅니다.” 엄마와 함께 하는 목욕을 좋아하는 딸을 위해 대중목욕탕 문턱도 어렵게 넘어섰다는 한씨는 “한 번 벽을 깨기 시작하니 아무것도 아닌 일들이 생각보다 많더라”고 돌아봤다.

한씨는 우울증 대신 몰입의 즐거움을 알게 해준 골프로 더 많은 꿈을 이루고 싶다고 했다. 그는 “골프가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가장 비슷한 눈높이에서 거의 동등한 조건으로 즐길 수 있는 활동이라는 것”이라며 “도쿄올림픽 코스에서 열린다는 내년 세계장애인선수권 우승이 첫 번째 목표이고, 2024년 또는 2028년 대회에 정식 종목으로 열릴 가능성이 크다는 패럴림픽(장애인올림픽) 골프도 당연히 도전할 것이다. 비장애인과 겨루고 소통하는 기회 또한 계속 늘려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씨는 사고 전부터 버킷리스트 중 하나였던 트라이애슬론(철인 3종 경기)도 내년에 도전하기로 했다며 호탕하게 웃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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