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상법 시행령 개정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정기주주총회 개최 전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 제출 의무화, 사외이사 임기 제한 조치의 시행이 유예될 것으로 전망된다. 가뜩이나 기업 실적 악화, 경기 침체로 경제 상황이 어려운 가운데 기업 경영 활동에 심각한 장애가 우려된다는 재계의 의견을 정부가 받아들인 것으로 풀이된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법무부는 지난 11월 초 입법 예고를 마치고 이르면 연내 시행 예정이었던 상법 시행령 개정안의 일부 내용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주총 소집 통지 시(개최 2주 전)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 첨부 의무화, 사외이사 임기를 현재 재직 중인 상장사에서 6년, 계열사 포함 9년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해당된다. 다만 임원 후보자 세부 경력을 정기주총 안건에 기재해 공개하는 방안은 예정대로 시행될 가능성이 높다.
법무부의 한 관계자는 이날 “전체적으로 취지는 바람직하지만 일부 내용에 대해서는 준비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고 내년 정기주총부터 적용하려면 준비 기간이 너무 짧다는 점을 고려해 1년 정도 유예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9월 박상기 전 장관 퇴임 이후 법무부 장관직이 공석으로 남아 있어 최종 결정은 신임 장관 임명 후 이뤄질 것으로 전망된다.
법무부는 금융위원회와 함께 4월24일 ‘상장회사 등의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고 5개월 후인 9월24일 이를 반영한 상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주주에게 정보 제공을 확대하면서 정기주총 개최 시기를 분산해 의결권의 실효성을 높이고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강화한다는 취지다. 그러나 재계에서는 “정기주총 개최 전 사업보고서·감사보고서 제출 의무화는 현행 자본시장법의 사업보고서 제출기한(사업연도 말 이후 90일 이내), 외부감사법의 감사보고서 제출 기한(정기주총 개최 1주 전)을 임의로 단축해 상위법과 상충되고 감사 기간 단축에 따른 부실 감사도 우려된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외이사 임기 제한에 대해서는 장기간 재직이 사외이사의 독립성을 침해한다는 타당한 근거가 없고 민간기업의 경영활동에 정부가 과도하게 개입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올해 기업 실적이 대폭 악화한 가운데 연간 경제성장률 2% 달성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경제 상황도 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거래소와 한국상장회사협의회가 11월 발표한 12월 결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 579개사의 3분기 누적 영업이익은 82조1,610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8.77%나 줄었다.
재계에서는 상법 시행령 개정안의 일부가 연기되더라도 여전히 내년 정기주총이 걱정된다는 우려가 높다. 감사·감사위원 선임에 대한 최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3%룰’이 유지되고 있는 가운데 2017년 12월 섀도보팅(의결권 대리 행사) 제도가 폐지됐기 때문이다. 정기주총에서 1개 이상 안건이 부결된 상장사 수는 섀도보팅 폐지 직후인 2018년 76개에서 2019년 188개로 급증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현재 조건이 유지된다면 내년 정기주총에서 감사·감사위원을 선임하지 못하는 상장사가 238개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한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가장 큰 문제는 상법 제정 초기부터 유지되고 있는 3%룰인데 정부가 그것을 고칠 생각은 없어 보이니 답답하다”고 토로했다. /박경훈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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