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세청이 암호화폐거래소에 처음으로 세금을 부과했다. 단, 아직 암호화폐의 법적 정의와 과세 근거 등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여서 과세당국은 조세조약을 근거로 국내에 거주하지 않는 외국인만을 대상으로 했다. 정부는 ‘소득이 발생한 곳에 세금을 매기겠다’는 원칙이지만, 업계는 과세 근거가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 세금이 부과된 것에 당혹해하는 분위기다.
29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암호화폐거래소 빗썸은 최근 국세청으로부터 외국인 고객의 소득세 원천징수 명목으로 803억원(지방세 포함)의 과세 통보를 받았다. 빗썸 운영사인 빗썸홀딩스의 최대주주 비덴트는 지난 27일 이 같은 내용을 공시했다.
국세청은 비거주자(외국인)가 국내에서 벌어들이는 소득에 대해 중개·양도한 곳에 원천징수를 한다는 논리를 빗썸에 적용했다. 내국인에게 소득세를 부과하려면 ‘열거주의’ 원칙에 따라 암호화폐 거래이익을 기타소득 등으로 분류해야 하는데 아직 암호화폐를 자산으로 볼지 화폐로 볼지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여서다. 현재 국내에는 이에 관한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국회에 계류돼 있다.
업계에서는 국세청이 외국인 거래자가 빗썸을 통해 출금한 금액 전체를 ‘기타소득’으로 보고 과세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기타소득은 상금·복권당첨금 등 일시적으로 발생한 소득을 뜻한다. 사업소득으로 잡으려면 거래 외국인들을 일일이 조사해야 한다. 국세청 관계자는 “세법상 과세기한(소득 발생 시점 이후 5년)이 있어 부과제척 기간으로 인해 무작정 기다리다 전혀 세금을 매기지 못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손 놓고 있다 향후 자산으로 인정될 경우 800억원의 세수를 날리게 돼 직원들이 중징계를 받을 수 있다는 우려도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국세청이 과세 방침으로 돌아서면서 내국인도 앞으로 종합소득세 신고 등을 통해 암호화폐로 번 수익에 대해 소득세를 내야 할 가능성도 높아졌다.
다만 국세청의 빗썸 과세가 다소 무리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비거주자의 빗썸 출금액을 기타소득으로 해석하려면 암호화폐가 자산으로 인정돼야 하는데 암호화폐의 법적 지위에 대한 규정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암호화폐 거래로 경제적 손해를 봤을 수도 있는데 매매 차익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출금액 전부를 기타소득으로 보고 과세한 데 대해서도 논란이 예상된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예외적으로 조세조약을 근거로 했다고 하나 과세당국이 거래소에 사전에 가이드라인을 준 적이 있는지, 거래소가 해당 외국인을 찾아 구상권 청구가 가능할지 등을 두고 논란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일단 빗썸은 세금을 납부한 뒤 정식 절차에 따라 쟁점을 소명할 계획이다. 빗썸코리아는 “이번 과세와 관련한 법적 대응을 계획하고 있어 최종금액은 추후 변동될 수 있다”고 밝혔다. /빈난새기자 세종=황정원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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