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은행은 올해 디지털금융그룹 산하에 ‘스마트앱개발부’를 신설했다. 지난해 전면 개편을 거치며 우리은행의 핵심 채널로 올라선 모바일뱅킹 애플리케이션 ‘우리WON(원)뱅킹’을 상시 고도화하기 위해서다. 기존 디지털마케팅부는 ‘디지털마케팅센터’로 확대해 ‘디지털영업추진부’와 ‘스마트고객부’로 분리했다. 개인고객은 물론 핀테크 기업이 쉽게 넘보기 어려운 기업고객에 대해서까지 비대면 채널에서의 마케팅 전략을 보다 체계적으로 수립·추진한다. 지난해 말에는 디지털그룹 직속으로 내부통제팀도 신설했다. 그 자체로 작은 은행의 구색을 갖춰가고 있는 것이다.
이 결과 지난해 4개 부서, 16개 팀, 직원 130~150명이었던 디지털그룹은 이제 6개 부서, 20개 팀 186명의 조직으로 훌쩍 불어났다. 손태승 우리금융지주 회장 겸 우리은행장이 “영업점에 의존하지 않고도 수익을 이끌어내는 인터넷전문은행 수준의 조직모델을 구축하라”며 지난해 디지털그룹을 ‘은행 속 은행(Bank in Bank·BIB)’ 체제로 전환하고 독립적인 인력·예산·사업 운영 권한을 보장한 데 이은 조치다. 디지털그룹이 단순히 은행 내 여러 사업그룹 가운데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은행 본업으로서의 성과를 낼 수 있는 ‘디지털은행’으로 진화해야 한다는 우리은행의 비전이 현실화하고 있다.
올해 우리은행의 디지털 전략은 △디지털 기반의 재무적 총량·수익을 늘리고 △디지털 금융의 라인업을 확대 구축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은행이 디지털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수치로 보여주는 게 목표다. 은행만이 할 수 있는 상품·서비스를 디지털 기반으로 제공해 독자적인 수익을 창출하고 이를 지표로 입증하겠다는 얘기다. 우리은행은 이를 위해 올해부터 영업조직 핵심성과지표(KPI)에서 디지털 관련 실적을 일체 삭제했고 현재는 디지털 부문만의 재무 목표를 독립적으로 측정·달성하기 위해 은행의 관리회계시스템을 전면 개편하고 있다. 디지털 채널이 영업점의 도움을 받지 않고도 얼마나 많이, 또 얼마나 효율적으로 돈을 벌었는지를 회계적으로 검증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이에 따라 우리은행은 올 하반기부터는 새로운 기준에 따라 디지털 부문만의 투자 대비 비용과 수익(Profit&Loss·PL)이 담긴 성적표를 산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대면·비대면 채널 각각의 PL을 정확히 측정해야 그 데이터를 기반으로 디지털 금융 변화에 맞는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우리은행 디지털그룹을 이끄는 황원철 최고디지털책임자(CDO) 겸 디지털금융그룹장은 “지난해는 은행 본업으로서의 성과를 창출하기 위한 디지털 체제를 준비하는 단계였다면 올해는 양과 질 두 가지 측면에서 그 결과를 보여줘야 할 때”라며 “확장과 개척을 통해 디지털금융이 은행 본연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전체 수익에 기여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디지털금융 라인업 확대의 핵심은 은행만의 차별성 제고다. 우리은행은 특히 기업금융, 종합자산관리, 리스크 관리처럼 은행이 아닌 다른 업종은 쉽게 따라 할 수 없는 고유 영역에서 디지털화를 넓혀갈 계획이다. 이를 위해 준자산가와 일반 개인고객을 대상으로 셀프·비대면 자산관리(WM) 서비스를 개발하고 우리은행의 모바일뱅킹 앱인 ‘우리WON(원)뱅킹’ 안에 이를 구축할 예정이다. 기업고객을 위한 비대면 상품도 준비 중이다. 상품·서비스의 생산부터 최종 공급에 이르기까지 전체 산업의 연쇄적인 공급망을 고려해 금융 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급망 금융(Supply Chain Finance)’이 대표적이다. 기업의 금융서비스 수요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단순히 고객 기업의 재무제표만이 아니라 해당 기업이 속한 산업의 공급망과 관련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파악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나온 서비스가 공급망 금융이다. 아직 국내에서는 소상공인·중소기업의 운전자금 조달을 위한 금융 서비스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고도화된 공급망 금융 활성화를 위해 고객 기업, 전사적 자원관리(ERP) 업계 등과 협업하고 있다”고 밝혔다.
우리은행이 이처럼 ‘은행 본업으로서의 디지털 성과 창출’을 목표로 내건 것은 급변하는 금융 환경 속에서 은행은 보다 새롭고 부가가치가 높은 뱅킹 서비스의 영역을 만드는 방식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서다. 오픈뱅킹 시행과 데이터 3법 개정으로 핀테크 기업이 도전할 수 있는 금융 영역이 넓어진데다 강력한 기술력, 디지털 플랫폼을 갖춘 ‘빅테크’까지 잇달아 금융산업에 진출하는 상황에서 은행이 기존과 똑같은 영역을 지키기 위해 이들과 경쟁을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는 얘기다.
‘개방형 혁신’ 전략에 따라 외부 핀테크와의 협업 생태계는 앞으로도 더 확대해나갈 계획이다. 특히 데이터 3법 통과로 새롭게 출현할 마이데이터 산업에서 유망한 핀테크 업체와의 협업이 우선순위다. 이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다방면의 핀테크 기업들에 대한 적극적인 인수합병(M&A)으로 금융지주 포트폴리오를 확장할 필요가 있다는 게 황 그룹장의 생각이다. 그는 “은행·증권·카드·보험 등 전통적인 포트폴리오에 머무를 게 아니라 새롭게 조성된 핀테크 기업들을 금융지주 포트폴리오 안으로 끌어들이는 게 필요하다”며 “오픈뱅킹이나 데이터 3법은 기존 은행보다 핀테크에 더 이익이 되는 변화인 만큼 금융지주로서는 새로운 환경에 대응해 유망한 핀테크 기업들을 M&A하는 편이 낫다”고 의견을 밝혔다.
/빈난새기자 binther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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