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발산업의 거목’ 박연차 태광실업 그룹 회장이 75세의 나이에 숙환으로 별세했다.
태광실업 그룹 관계자에 따르면 박 회장은 지병인 폐암으로 인해 서울 삼성병원에서 꾸준히 치료에 전념해왔으나, 최근 병세가 급속도로 악화돼 끝내 회복하지 못하고 숨을 거뒀다.
태광실업 그룹은 “유족들이 조용히 장례를 치러달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조문과 조화를 정중히 받지 않기로 했다”며 “빈소와 발인 등 구체적 장례일정도 외부에 알리지 못함을 너그러이 양해 부탁드린다”라고 밝혔다.
박 회장은 1945년 11월 밀양시 산외면에서 5남 1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넉넉하지 못한 가정형편에 어려운 성장기를 보낸 대표적 자수성가형 기업인이다. 맨손으로 국내 신발산업의 부흥기를 일으킨 그는 1966년 월남 파병 시절 처음으로 사업에 대한 흥미와 재능을 발견했다.
이후 1968년 44개월간의 복무를 마친 뒤 사회에 나와 1971년 정일산업을 창업했다. 1980년에는 법인명을 정일산업에서 태광실업으로 전환하고 임종 직전까지 50여년간 그룹 경영에 힘을 쏟았다.
고인은 평소 돈을 좇기보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신뢰의 경영철학’을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초창기 시절 부도위기에 따른 경영난 등을 극복하고 1987년 나이키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했다. 1994년에는 신발업계 최초로 베트남에 진출해 현지법인 태광비나실업을 설립했다.
2006년에는 정밀화학회사 휴켐스를 인수한 것으로 기점으로 신발을 넘어 사업 다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했다. 이에 힘입어 현재 태광실업그룹은 신발을 비롯 화학, 소재, 전력, 레저를 아우르는 15개 법인 운영, 2019년 기준 매출 3조8,000억원, 임직원 10만여 명 규모의 견실한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
고인은 국가와 지역사회 발전에 대한 공헌도 남달랐다. 태광실업그룹은 1999년 재단법인 정산장학재단을 설립을 시작으로 국내외 국가 및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장학사업, 재난기금, 사회복지, 의료, 문화, 스포츠사업 등 현재까지 6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지원해오고 있다.
유족으로는 부인 신정화 씨와 아들 박주환 태광실업 기획조정실장, 딸 박선영 씨, 박주영 정산애강 대표, 박소현 태광파워홀딩스 전무 등이 있다.
한편 고인은 故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인연으로 대중들에게 이름을 알리기도 했다. 일명 ‘박연차 게이트’의 주인공인 박 회장은 2009년 농협과 세종증권 관련 주식 조작 수사 과정에서 여야 가리지 않고 정치인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를 받았다. 검찰은 이를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의 수사에 나섰으나, 수사 도중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대검찰청 중앙수사부는 해당 사건을 ‘공소권 없음’ 처분하고 수사를 종결했다.
/조예리기자 sha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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