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가세가 꺾이긴 했지만 15일 기준으로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 중 대구·경북이 88%에 달하니 지역민들의 고심이 깊다. 지역 내 이동도 중단되다시피해 미술관과 박물관 등 문화시설은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흔히 대구를 ‘보수적인 도시’라 하지만 대구는 한국 근대화단의 중요한 작가인 이인성·이쾌대 등을 배출했고 국내파 비디오아트 1세대 박현기, 실험·개념미술의 작가 이강소와 최병소 등을 낳았다. 지난 13일 한국화랑협회와 서울옥션의 공동주관으로 열린 ‘코로나19 피해돕기 자선경매’에서는 근대화가 이인성을 비롯해 이강소·이배·최병소·이원희·도성욱·두민 등 대구 출신 작가들이 활약했다.
미술관을 찾아갈 수 없는 대신 온라인으로 감상할 수 있는 ‘대구 정신’의 작품들을 최은주 대구미술관 관장에게 추천받았다. 그 첫 작품인 이인성(1912~1950)의 ‘사과나무’는 그 자체로 대구의 상징이라 할 만하다. 대구·경북의 명물인 사과가 나뭇가지 휘어질 정도로 주렁주렁 탐스럽게 매달린 그림이다. 늦여름에 한창 익기 시작한 사과 안에는 자연의 풍요를 보여주는 푸름과 땅의 생명력을 상징하는 붉음이 공존하고 있다. 보색인 적색과 녹색을 나란히 배치한 이인성의 사과는 인상주의적 화풍이 느껴지면서도 토속적이고 독자적이다. 나무 아래로 알을 품고 있는 암탉의 곁을 수탉이 지키고 섰다. 희망의 새 날을 기다리는 듯하다.
대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난 이인성은 천부적 재능을 타고나 독학으로 그림을 익혔다. 전국 규모의 미술전에서 상을 받으며 주목받았고 ‘조선의 지보(至寶)’ ‘화단의 귀재’라는 별칭을 얻었으며 일본에까지 소문이 났다. ‘사과나무’는 완성된 그 해 대구 명덕초등학교에 기증됐다. 소장처인 대구시교육청이 대구미술관에 위탁했고 지난 1월 개막한 ‘소장품 100선’ 전시에도 출품됐다.
검은 나무에 흰 꽃이 소담스럽게 피어오른 작품은 정점식(1917~2009)의 ‘봄’이다. “고목에서 싹을 틔어 희망을 노래한다”며 최 관장이 권했다. 둥치 굵은 나무가 버티고 견딘 오랜 시간을 상상하게 한다. 그에 비례해 듬직하고 고고하다. 그 가지 끝에서 핀 꽃들은 별처럼 빛난다. 별스런 꾸밈없이 고고하게 기품을 드러내고 있다. 힘겨운 이 시기 넘기면 ‘봄 같은’ 나날이 올 것을 기원하는 듯하다. 나무 아래에 드러누운 개인지 고양이인지 모를 짐승이 계절의 여유를 함께 나눈다. 경북 성주 태생의 정점식은 주로 대구에서 활동했다. 작가는 그 시절 서양화가 대부분이 그랬듯 일본에서 유학했고 2차 대전을 피해 하얼빈에서 활동하며 큐비즘과 다다이즘, 러시아 아방가르드 등을 일찍이 접했고 자신만의 조형언어로 구현했다. 1957년에는 박고석·유영국·이규상·한묵·황염수 등과 ‘모던아트협회’에 동참했다. 구상미술 일색이던 당시 화단에 추상 화풍의 조형언어를 선보였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의 ‘올해의 작가’로 선정됐고, 대한민국예술원 상도 받았다. 계명대에서 오랫동안 후학을 양성한 화가가 학교에 자신의 작품을 기증했고, 캠퍼스에는 정점식의 호를 딴 극재미술관이 개관했다.
목판화가 김우조(1923~2010)의 ‘낙동강’은 그 기운만으로 “대구의 정신적 상징성”을 내뿜는다. 경북 달성군 출생의 김우조는 평생을 대구에서 활동했다. 목판화로 특히 유명하다. 1978년작인 낙동강은 굽은 물길 돌고 돈 끝에 평지에 내려와 유유히 흘러가는 도도한 강물을 보여준다. 강 건너 우뚝 솟은 둥근 산봉우리들은 그 어떤 세파에도 흔들리지 않을 듯하다. 조용하지만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은 강물 표면에 산 그림자가 절묘하게 드리웠다. 그림에 생명력을 더하는 것은 화면 앞 부분을 차지한 두 그루의 나무다. 혹독한 시련 견뎌낸 잎 진 겨울나무가 강인함을 드러낸다. 산도 강도 나무도, 모든 것들이 이 땅의 정신성을 응축한 듯하다.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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