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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팬데믹은 경제 아닌 의료위기다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지금은 돈 있어도 쓸수 없는 상황

감세, 현금지급 등 부양책에 앞서

의료시설 확충 최우선 순위둬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미국 워싱턴 정가의 대응이 경제 쪽으로 ‘중심이동’을 하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과 정치인들은 감세와 기업들에 대한 긴급구제에서 국민 전체를 대상으로 한 현금지급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선호하는 정책 도구들을 쏟아내고 있다. 충분히 논의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제안들이지만 초점이 빗나간 게 문제다. 이번 팬데믹은 본질적으로 경제위기가 아니다. 전반적인 의료관리시스템(헬스케어)의 위기다.

아마 학술적인 차원의 차이처럼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위기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 차이를 분명히 이해해야만 효율적인 대응책을 마련할 수 있다.

경제적인 위기상황에서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기도 하고 생활비가 없어 낭패를 당하기도 한다. 바로 이것이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발생했던 이른바 ‘수요충격(demand shock)’이다. 그런가 하면 다양한 이유로 생산자들이 제품가격을 인상해 소비자들의 상품 구입을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경제학자들은 이를 ‘공급 충격(supply shock)’이라고 부른다. 1973년과 1979년의 석유 위기가 여기에 속한다.

지금 소비자들은 돈이 있다 해도 쓰지를 못한다. 가게와 식당·영화관·운동경기장·쇼핑몰 등이 모조리 문을 닫아걸었기 때문이다. 아직 문을 닫지 않은 공장들도 공급업체로부터 부품을 받지 못한다거나 그들이 만든 상품을 구입해줄 일선 소매점들이 많지 않으면 조만간 가동을 중단할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소비자들의 손에 직접 현금을 쥐어 준다고 해도 소비의 ‘점프 스타트’는 불가능하다. 마찬가지로 생산자들에게 공적자금을 쏟아부어도 생산을 ‘급속점화’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코로나19 사태는 2008년도 금융위기로 촉발된 경기침체, 혹은 9·11테러 참사의 후유증과는 규모와 차원이 다르다. 전문가들은 현재 상황이 단 몇 달만 이어져도 ‘대공황’을 능가하는 경제적 파국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필자는 정부가 추진 중인 포괄적 경제조치에 반대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는 음식을 먹고 약을 사고 각종 대금을 지급할 만한 경제력을 필요로 한다. 앤드루 로스 소킨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현 상황에서 정부가 택해야 할 최상의 접근법이 무엇인지 전문가들에게 물어봤다. 그들의 의견을 종합해 소킨이 내린 결론은 “직원들을 해고하지 않겠다는 단 하나의 조건을 달아 모든 기업과 자영업자에게 긴급 단기대출에 해당하는 ‘브리지론’을 무이자로 제공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엄청난 비용이 들어가겠지만 그보다 훨씬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경기 대침체(great depression)를 피하려는 해법이다.

그러나 미국이 의료관리시스템의 위기를 맞고 있다는 사실을 최우선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접근법도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고 위기는 해소되지 않을 것이다.

중국은 18~20일 본토에서 추가 확진자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고 발표했다. 한국과 대만·싱가포르 역시 감염자의 확산세를 보여주는 가파른 상승곡선이 점차 평평해지고 있다. 이들은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내놓기에 앞서 코로나19라는 의료위기를 처리하는 데 최우선 순위를 뒀다.



반면 미국의 감염자 수는 위태로울 만큼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최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톱기사 제목은 ‘코로나바이러스 검사로 전국이 혼란’이었다. 신문은 “급조된 전국의 선별검사장은 엉성했고 분위기는 어수선했다”고 전하고 “검사 진행속도 역시 전문가들의 예상보다 훨씬 더뎠다”며 이 같은 혼란은 “연방정부의 늑장 대응이 부분적인 이유”라고 진단했다.

미국의 감염 의심자 검사 비율은 충격적일 정도로 낮다. 대다수의 경제부국에 비해 뒤진 것은 물론 이번 위기를 훌륭히 관리한 아시아 국가들과는 아예 비교가 안 된다. 지금도 미국 전역의 병원들은 병상과 의료장비 및 의료품이 턱없이 부족하다며 경고음을 내고 있다. 하지만 최악의 상황은 아직 오지 않았다. 감염자 수가 이틀마다 두 배로 늘어나는 가운데 미국의 의료시스템은 앤드루 쿠오모 뉴욕 주지사의 말대로 ‘쓰나미’를 맞이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의 대응은 여전히 느리고 단속적이다. 이미 몇 주 전에 전문가들은 수천개의 병상을 추가로 마련할 것을 주문했지만 해군은 이제야 두 척의 병원선에 대한 정비작업을 벌이고 있다. 병원선에 몇 명의 인력을 배치해야 할지조차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위생산(defense production)’ 명령권 발동 계획을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말뿐이다. 도대체 무엇을 기다리는 걸까. 트럼프 대통령은 제조업체들에 공급부족 사태를 빚고 있는 핵심 의료장비 생산에 착수하라고 당장 지시해야 한다. 이와 함께 군을 동원해 야전 선별진료소와 야전병원을 개설하고 주요 거점 도시의 호텔과 컨벤션센터를 병원으로 전환하도록 해야 한다. 또 백신 개발과 생산을 위해 맨해튼 프로젝트와 유사한 형태의 민관 합작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수십년에 걸쳐 이뤄진 예산삭감으로 인력과 장비 및 자금 부족에 허덕이는 연방기관들은 이번과 같은 규모의 위기에 제대로 대처할 여력이 없다.

한 가지가 더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 인류 공동의 위협에 맞서기 위한 국제적인 공조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유럽연합(EU)이 함께한다면 예컨대 백신 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은 훨씬 커질 것이다.

특히 중국은 세계가 필요로 하는 물품과 의료용 원자재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미국인들이 추가비용을 지불하지 않고 싼값에 중국산 의료장비를 구입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이 관세를 철폐한다면 중국 역시 이에 화답해 생산량을 늘릴 것이다.

마지막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로 부르는 등 중국의 적대감을 불러일으키고 외국인 혐오증을 부추기는 발언을 자제해야 한다. 미국은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전쟁 중에는 적을 만들기보다 우군을 찾으려는 노력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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