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긴급 구제법안이 의회에서 부결되면서 글로벌 경기침체 공포감이 다시 시장을 지배했다. 도쿄올림픽이 연기될 가능성이 커진데다 고위험 기업부채에 대한 우려도 확대되면서 국내 증시가 급락해 올 들어 네 번째 사이드카(프로그램 매매 호가 일시정지)가 발동됐다. 정부가 내놓은 시장안정대책이 별 힘을 쓰지 못한 채 지난주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불안심리가 어느 정도 해소됐던 환율도 급등세로 돌아섰다.
23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 거래일보다 5.34%(83.69포인트) 내린 1,482.46으로 장을 마쳤다. 600억달러 규모의 한미 통화스와프 체결로 지난 20일 1,500선을 회복한 지 하루 만에 다시 1,400대로 내려가면서 시가총액이 또다시 1,000조원 밑으로 주저앉았다. 코스닥지수도 5.13% 하락한 443.76을 기록했다.
이날 증시는 해외에서 전해오는 소식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지수가 크게 출렁거렸다. 장 초반에는 미국 하원에서 미 정부가 제안한 긴급 구제법안이 민주당의 반대로 부결됐다는 소식에 개장 직후 유가증권시장과 코스닥시장에 잇달아 매도 사이드카가 발동될 정도로 투자심리가 악화됐다. 올 들어 코스피시장에서는 매도 사이드카가 이날을 포함해 네 번이나 발동됐다. 하지만 곧이어 미국 공화당이 긴급 구제법안의 재추진과 미국의 석유 감산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하락폭이 3%대까지 축소됐지만 오후 들어 일본 도쿄올림픽 연기 가능성과 고위험 기업부채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지수는 다시 낙폭을 키웠다. 우리나라의 이달 20일까지 수출지표가 우려보다 양호하게 나왔지만 공포에 질려버린 시장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서정훈 삼성증권 책임연구위원은 “미국의 구제법안이 부결된데다 장중 악재가 계속 터지면서 낙폭이 더 커졌다”며 “도쿄올림픽 연기, 회사채발 경기침체 우려 등에 심리가 극도로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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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투자가들의 국내 증시 ‘투매’는 이날도 이어졌다. 6,400억원어치가 넘는 주식을 팔면서 약세장을 이끌었다. 여기에 기관까지 매도세에 붙으면서 국내 증시에서 매수세가 실종됐다. 개인이 9,200억여원을 순매수하면서 버텼지만 외국인과 기관의 ‘쌍끌이’ 매도에 손을 들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들이 국내 주식을 대거 매도하자 한미 통화스와프로 진정됐던 원·달러 환율도 뛰었다. 이날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18원50전 오른 1,265원에서 출발해 한때 1,282원50전까지 치솟았다가 급등세가 다소 진정되면서 1,266원50전에 거래를 마쳤다. 달러인덱스는 전일보다 소폭 낮아졌지만 달러확보 경쟁과 국내 시장에서 외국인 자금 철수가 지속되면서 원화가치는 재차 하락하는 모습이다. 전승지 삼성선물 연구원은 “글로벌 경기침체 우려 속에 국내 주가가 떨어지고 원화 등 아시아 통화가치가 약세를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성호·백주연기자 junpar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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