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EC+(OPEC과 10개 주요 산유국 연대체)가 난항 끝에 12일(현지시간) 감산에 합의한 데는 파산위기에 내몰린 미국 셰일 오일 업계를 고려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역할이 컸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글로벌 원유 수요 감소량이 하루 3,000만배럴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이번 감산 합의만으로는 공급 과잉을 해소하고 국제 유가 반등을 이끌어내기에 역부족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6일 OPEC+의 감산 합의 결렬 이후 사우디아라비아와 러시아의 증산 경쟁으로 ‘유가 전쟁’이 발발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양측에 감산 합의를 종용해왔다. 특히 미국은 지난 9일 OPEC+ 회의에서 멕시코의 반대로 감산 합의가 불발되자 멕시코에 할당된 감산량 중 일부를 떠안기로 하면서 유가전쟁을 종식시켰다. 미국이 유가전쟁에 적극 개입한 것은 국제유가가 20년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면서 자국의 셰일 산업이 고사 위기에 처했기 때문이다. 최근 셰일가스 채굴·생산업체인 화이팅페트롤리엄이 파산보호신청을 했고 미국 최대 석유회사 중 하나인 옥시덴털페트롤리움은 직원 급여를 최대 30% 삭감했다. 특히 셰일산업이 붕괴되면 이 분야에 투자한 금융기관들까지 연쇄 부도를 맞으며 미 금융시장 전반의 위기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돼왔다.
이에 트럼프 대통령은 수차례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이들 국가의 석유에 대한 금수조치 및 각종 제재 가능성을 시사하며 감산 합의를 이끌어냈다. RBC캐피털마켓의 헬리마 크로프트는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de facto) OPEC 의장이 됐다”고 평가했다.
코로나19 확산이 국제 원유시장에 가져올 충격이 예상보다 크다는 점도 사우디와 러시아의 감산 결정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올해 석유 수요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감소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증산을 통한 점유율 경쟁이 장기화할 경우 미국뿐 아니라 러시아와 사우디도 치명타를 입을 수 있다고 판단했을 가능성이 크다.
OPEC+가 합의한 오는 5~6월 하루 970만배럴 감산은 글로벌 공급량(하루 1억배럴)의 약 10%에 해당하는 것으로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감산 규모의 두 배가 넘는 역대 최대치다. 잠정 합의안에 따르면 감산 기준은 2018년 12월로 사우디·아랍에미리트(UAE)·쿠웨이트가 이달부터 산유량을 늘린 터라 하루 970만배럴을 이달 기준으로 계산하면 하루 1,200만~1,300만배럴을 감산하는 효과가 있다. 또 7월부터 올해 말까지는 하루 800만배럴, 내년 1월부터 2022년 4월까지는 하루 600만배럴로 감산 규모를 단계적으로 줄이기로 했다.
시장의 회의적인 관측을 깨고 최종 감산 합의가 성사되기는 했지만 유가 변동성이 여전히 크다는 쪽에 무게를 두는 분석이 적지 않다. AP통신에 따르면 미국 투자은행 레이먼드제임스의 에너지 전문가인 무함마드 굴람은 “이번 감산은 전례 없이 큰 규모지만 코로나19가 원유 수요에 미치는 영향 역시 전대미문급”이라고 지적했다.
/노희영·박성규기자 nevermind@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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