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성착취방과의 연관성을 이유로 극우사이트 ‘일베’를 폐쇄해달라는 청원이 다수 올라와 있다. 실제 성착취방 가담자으로 추측되는 유저들이 모여있는 텔레그램 대화방 말투를 포함한 ‘코드’가 ‘일베 코드’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반면 일베 유저들은 성착취방과의 연관성을 부정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일베는 성착취방의 주류 문화가 되었을까?
◇일베와 유사한 텔레그램 성착취방 코드=일베 코드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희화화가 핵심이라고 볼 수 있다. 일베 유저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희화화를 위해 그들만의 어미로 ‘노’를 붙인다. 일반인은 ‘밥 먹었냐’고 하는 것을 일베 유저들은 ‘밥 먹었노’라고 고쳐 쓴다. 또 그들만의 감탄사로 ‘이기야’를 사용하는데, 이는 노 전 대통령의 작전통제권 환수와 관한 연설 중에서 나온 단어를 따온 것이다.
이 외에도 일베 유저들은 노 전 대통령에 대한 합성 사진 및 영상을 만들어 조롱하고, 호남 출신을 포함해 자신들에게 동조하지 않는 세력을 ‘홍어’라고 비하한다. 이는 텔레그램 내 성착취방 가담자로 보이는 특정 유저들이 노 전 대통령 합성사진 이모티콘을 사용하고, 대화방 명칭 자체를 노 전 대통령 이름을 따서 만드는 등의 행태와 흡사하다.
◇“성착취방 가담자가 일베유저들”=하재근 문화평론가는 “텔레그램 성착취방 유저들의 말투와 일베 유저의 말투가 똑같다”는 점을 지적한다. 하 평론가는 “여성 성적 대상화와 미성년자에 대한 성적 욕망 표현 등 ‘일베 문화’가 ‘발전’해서 해외SNS로 넘어간 것”이라고 추정하고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당시 일베 사이트로 소위 ‘태극기 부대’로 불리던 중장년층이 대거 유입되며 기존 유저들이 빠져나갔다는 점은 하 평론가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실제로 일베 사이트에는 중장년층 유저들을 ‘틀딱(노인 비하 표현)’이라고 부르며 “사이트가 망했다”고 하소연하는 글이 다수 올라오는 중이다. 하 평론가의 주장을 따르면, 결국 타 사이트에서도 배척받은 일베 유저들은 폐쇄적인 텔레그램에 정착해 범죄를 저지른 셈이다.
◇“‘일베’는 극단적인 행태의 통칭”=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의 입장은 조금 다르다. 정 평론가는 “온라인 공간에서 일베 코드가 나타나면 일베라는 특정 집단이 그 코드를 따르는 것이라고 상상하는 데, 그게 아니다”라며 “보통 사람인데 일베 코드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고 주장했다. “일베 코드는 특정 행태를 통칭하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것이다.
성착취방인 ‘박사방’을 운영한 범죄 피의자인 조주빈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조씨의 변호인 측은 지난달 조씨에 대한 ‘조주빈=일베 논란’과 관련해 진보성향 커뮤니티인 ‘오늘의유머(오유)’ 사이트를 언급하며 “(조씨가) ‘오유’를 좋아했었다고 했다. 일베에 안 들어 간 것은 아니지만 ‘오유’를 많이 봤다고 했다”고 전했다. 결국 주조씨는 일베 유저는 아니지만 일베 코드를 따랐던 셈이다.
◇n번방의 주류문화가 된 일베, 거리낌 없이 따라하는 10대=두 평론가의 주장을 종합하면 ‘n번방’에는 기존 일베 유저들과 일베 코드를 따르는 극단주의 성향의 유저들이 혼재한 것으로 보인다. 세계적인 극단주의 흐름이 우리나라에서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하 등 일베 코드로 나타난 것으로 일베 유저들에 의해 일베 코드가 비(非)일베 유저들로까지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문제는 10대들이 ‘일베’로 대표되는 극단주의와 범죄에 크게 영향 받고 있다는 점이다. ‘이기야’ 20세, ‘부따’ 19세, ‘태평양’ 16세, ‘로리대장태범’ 19세, ‘갓갓’ 19세(추정) 등 텔레그램 내 성착취방 10대 가담자들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한 2003년 당시 2살, 3살의 갓난아이에 불과했다. 그럼에도 지난달 28일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이 성착취물 제작 판매 유포 사범 72명을 검거해 조사해본 결과에서도 10대가 33명(45.8%)으로 가장 많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사회학과 교수는 “10대들은 논리적으로 따져보지 않는다. 코드가 맞으면 쉽게 선동 돼 군중문화로 받아들이고 따라한다”며 “인권 감수성에 대한 교육을 더 각별히 신경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방진혁기자 bread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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