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에서 서울 입성을 노리는 40대 직장인 박모씨는 예전부터 눈여겨본 마포구 ‘염리삼성래미안’ 인근 부동산을 방문했다가 낙담했다. 올해로 준공 20년 차를 맞은 이 단지는 지난 2017년 상반기에 전용 59㎡가 4억원 중후반대였다. 하지만 현재는 매매가가 9억원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박씨는 “그동안 마포구 집값이 많이 올라 예상은 했지만 3년 전만 해도 무리하면 갈 수는 있던 구축 아파트가 이제는 언감생심 고가 아파트가 돼 버렸다”며 “형편에 맞춰 여러 지역을 알아보고 있는데 사실 서울은 어느 동네든 5억원대로 갈 수 있는 아파트 단지가 많지 않은 게 문제”라고 말했다.
서울에서 6억원 이하 아파트가 지난 3년간 반토막 났다. 현 정부 초기 10곳 중 6곳에 달하던 서울 내 6억원 이하 아파트의 비중은 현재 10곳 중 3곳에 불과하다. 그 사이 10곳 중 2곳이 채 되지 않던 9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는 현재 10곳 중 4곳으로 늘었다. ‘강남 집값’을 잡기 위해 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을 펼쳐왔지만 역설적으로 6억원 이하의 아파트 비중만 줄어들었다. 21번째 대책이 나오는 동안 서울 집값만 더 오른 셈이다.
◇6억 이하 아파트, 반토막 = 17일 본지가 부동산114에 의뢰해 분석한 ‘서울시 아파트 가격대별 분포 현황’을 보면 2017년 8월 84만4,541가구에 달하던 6억원 이하 아파트 수는 2020년 5월 현재 38만7,393가구로 절반 이상(54.1%) 줄어들었다. 감소 폭은 45만7,148가구에 이른다. 비율로 보면 6억원 이하 아파트는 같은 기간 63.0%에서 31.1%로 줄어들었다. 6억원 이하 아파트는 비규제 지역에서 개인 매수자가 자금조달계획서 제출 의무를 면제받는다. 또 주택금융공사의 정책자금 대출인 보금자리론의 기준이 되기 때문에 정책적으로 평범한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중저가 아파트로 분류된다.
6억원 이하 아파트가 줄어든 만큼 다른 금액 구간대 아파트는 늘었다. 6억원 초과 9억원 미만 아파트의 비율은 18.1%에서 28.8%로 상승했고 특히 9억원 이상 고가 주택의 비율은 3년 새 18.8%에서 40.1%로 두 배 이상 급증했다.
지역별로 보면 관악구에서는 2017년 8월까지만 해도 95.9%의 아파트가 6억원을 넘지 않았는데 지금은 6억원 이하 아파트의 비율이 절반 아래(47.5%)로 줄어들었다. 현재 관악구 내 아파트 절반(50.3%)은 6억원에서 9억원 사이이며 9억원 초과 아파트의 경우 2017년에는 하나도 없었지만 현재는 2.3%가 고가 아파트다.
동작·성동·용산·중구·광진구 등 도심 접근성이 높은 자치구에서는 6억원 이하 아파트가 사실상 사라졌다. 광진구의 경우 6억원 이하 비율이 41.7%에서 현재 3.3%에 불과하다. 그 외 동작구(54.9%→6.0%), 성동구(47.7%→2.5%), 송파구(24.9%→4.9%), 용산구(25.9%→2.9%), 중구(58.5%→4.8%)에서 중저가 아파트 비율이 쪼그라들었다. 그 외 강남 3구에서도 2017년까지는 두자릿수의 비율로 중저가 아파트가 있었지만 지금은 모두 한자릿수대 비율로 줄었다.
◇ 규제의 역설, 중저가도 풍선효과 =6억원 미만 아파트 비중의 축소는 우선 시세 상승에 따른 결과라는 게 표면적 분석이다. 2~3년 전부터 서울 아파트 가격 상승세가 본격화한 이후 중저가 아파트들이 신축 아파트와 가격 갭 메우기를 하면서 가격이 상승했다.
강남3구의 고가 아파트를 타깃으로 한 고강도 부동산 규제 정책의 풍선효과라는 분석도 나온다. 저금리로 풍부해진 유동성이 부동산 시장에 몰린 상황에서 대출 규제 등이 심해지면서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규제가 적은 중저가 아파트에 수요가 몰렸다는 것이다. 실제 직방이 지난해 12·16 대책 발표의 영향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해 4·4분기와 올해 1·4분기 아파트 거래를 분석한 결과 전체 거래 중 6억원 이하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은 38.4%에서 52.1%로 14%포인트가량 올랐다. 반면 9억원 초과~15억원 이하 아파트의 거래 비중은 19.5%에서 12.8%로 줄었고 15억원 초과의 비중은 9.4%에서 3.4%로 낮아졌다. 고가 주택 거래를 잡으려 하자 중저가 주택 수요가 늘어난 셈이다.
김은진 부동산114리서치센터장은 “9억원 이상 아파트가 늘어난 점은 2~3년 전 분양했던 고가 신축 아파트가 입주한 영향으로 볼 수 있다”며 “다만 고가 아파트뿐 아니라 전체적으로 서울 아파트의 평균 매매가가 10억원에 육박할 정도로 오르면서 중저가 아파트는 더욱 줄어들게 됐다”고 설명했다.
/김흥록기자 ro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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