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8년 스페인독감은 전 세계적으로 5,000만명, 미국에서만 7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그로부터 100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스페인독감이 왜 그토록 치명적이었는가에 대해서는 완벽한 규명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면역력을 통해 몸의 방어체계를 높이면서 모든 사람이 죽지는 않았다는 사실이다. 적절한 항체가 있었다는 의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라는 초유의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어느 때보다 면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똑같이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어떤 사람은 완치되고, 어떤 사람은 목숨을 잃는 것은 면역력의 차이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면역력은 과연 어디까지 우리 몸을 지켜줄 수 있고, 또 면역력은 어떻게 키우는 걸까?
신간 ‘우아한 방어’는 뉴욕타임스 과학전문기자 출신인 작가 맷 릭텔이 쓴 면역에 관한 리포트다. 저자는 면역학의 기본 용어부터 최신 이론들, 백신이 없던 시기의 면역질환, 연구실에서 속속 밝혀지는 최첨단 발견까지 면역의 과거와 현재, 내일을 조망한다.
책은 실제 면역 이상을 겪게 된 4명의 생생한 삶과 투쟁을 담고 있다. 이른바 면역질병이라 불리는 염증, 감염병, 암, 자가면역 질환 등이다. 저자의 가장 친한 친구 제이슨 그린스타인은 어느날
악성림프종의 일종인 호지킨병 징후를 겪은 이후 급격하게 쇠약해져 간다. 워싱턴 D.C의 변호사 밥 호프는 핼러윈파티에서 에이즈에 감염됐다. 골프 선수 출신이자 대형컨설팅 회사 중역인 린다 세그레는 류머티스성 관절염으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빼앗긴다. 명문대를 졸업한 메러디스 브래디컴은 갑자기 원인 불명의 고열과 염증, 햇빛 알레르기에 시달리는 루푸스병에 걸렸다.
이들이 앓는 질병은 모두 면역에서 비롯된 질병들이다. 책은 이들의 사례를 통해 면역의 실체를 보다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이러한 질환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다는 점도 깨닫게 한다. 저자게 소개한 4명과 마찬가지로 현대인들은 스트레스, 화학물질, 약품 오남용, 급격한 사회 변화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로 인해 이전 세대보다 훨씬 더 빈번하게 질병에 시달리고 있다. 외부의 침입에서 우리 몸을 지키주는 방어시스템이 무너지면서 자신이 자신을 공격하는 끔찍한 질병에 시달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 사회를 거대한 하나의 신체로 보고 우리 안의 ‘우아한 방어’ 시스템이 언제나 우리를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몸속의 다양성을 인정해야 한다. 지나친 통제나 편견은 어쩌면 사회를 자가면역 질환에 빠뜨릴 수 있다.” 2만원.
/최성욱기자 secret@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