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 3억원 정도 매출이 나왔는데 지금은 4,000만원도 안 나와요. 주변에는 빈 가게뿐 아니라 단축영업하는 곳도 많아요. 앞에 있는 카페도 예전에는 자정까지 영업했는데 지금은 10시면 문을 닫습니다.”
19일 오전 명동의 한 대형 상가에서 만난 박모(32)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매출이 거의 10분의1토막 났다며 이같이 말했다. 서울에서 땅값과 임대료가 가장 비싸다는 명동 상권의 현실이다. 평소라면 젊은이들과 중국 관광객 등 외국인들이 넘쳐나겠지만 코로나19 사태 이후 발길이 뚝 끊기면서 보릿고개를 넘고 있다.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소비 충격을 줄이기 위해 14조원에 달하는 긴급재난지원금까지 풀었지만 꽁꽁 얼어붙은 소비심리를 녹일 마중물로 작용하기에는 역부족이다.
◇소비 마중물은커녕…‘반짝’ 하고 끝난 소비 촉진=이날 서울경제 취재진이 서울 종로구 광장시장과 남대문시장·명동 등지에서 만난 상인들은 재난지원금의 소비 효과가 지난달에 그치고 이달까지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정부의 예상과 달리 재난지원금의 효과가 말 그대로 일시적인 ‘반짝 효과’에 그쳤다는 지적이다. 남대문시장에서 의류 매장을 운영 중인 정모(59)씨는 “평소 하루에 40~50장을 팔았는데 오늘은 4장 판매하는 데 그쳤다”며 “하루 40만원씩 나오던 매출이 요즘은 20만원까지 줄었다”고 했다. 그는 이어 “주변 상인들이 임대료도 못 내고 있다”며 “임대료 납부기간 연장을 요청하거나 보증금을 줄이면서 버티는 중인데 코로나19가 끝나기를 기다리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을 것 같다”고 한숨을 쉬었다.
광장시장에서 반찬 가게를 운영 중인 유모(51)씨는 “(재난지원금) 덕분에 매출이 한때 70%가량 늘었는데 지금은 거의 다 썼을 것”이라며 “일시적으로 좋아지기는 했지만 정부가 지속적으로 지원하지 않는 이상 분명히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 때부터 수십 년을 한자리에서 장사했는데 요즘 같은 때는 없었다”고 말했다.
생선 가게를 운영하는 김모(64)씨는 “지난달만 해도 평소에 비해 매출이 50%는 뛰었는데 지금은 손님이 없다”며 “우리끼리 하는 소리로 ‘재난지원금 다 썼나봐’ 한다”고 말했다. 명동도 마찬가지였다. 의류 멀티숍을 운영하는 한모(33)씨는 “재난지원금이 투입되고 가족 단위 손님이 잠깐 늘었지만 다시 줄어드는 추세”라고 말했다.
◇최저임금은 상수, 코로나19는 변수…“아르바이트 왜 뽑나? 주인이 ‘몸빵’해야 돼”=소비심리가 살아나지 않으면서 아르바이트 신규인력 채용도 줄었다. 정부는 긴급재난지원금이 풀리면 서비스업 등 일부 단기 일자리 충격을 완충시켜주는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상인들은 경기 불확실성이 워낙 커 채용에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이날 인사동과 종로 젊음의 거리 등에서 방문한 8곳의 가게 중 아르바이트 채용 의사가 있다고 답한 곳은 두 곳에 불과했다. 대체적으로 지난 3~4월 아르바이트생을 줄이거나 근무시간을 단축했다는 답이 많았지만 매출이 늘어도 증원 의사는 없었던 셈이다. 박영진 알바콜 팀장은 “아르바이트 신규 공고 건수가 재난지원금 지급 첫주에 17% 정도 늘었다가 이후 감소세로 돌아섰고 이달 첫주에는 42%나 줄었다”며 “(일시적으로) 지역경제를 도왔다는 의견은 있지만 그렇다고 새로 사람을 채용할 정도는 아니었다는 뜻”이라고 분석했다.
인사동에서 주점을 운영하는 이주연(48)씨는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한 후 손님이 좀 늘었지만 이태원 클럽과 익선동 확진자 소동에 또 사람이 줄었다”며 “예측이 어려워 코로나19가 아예 잠잠해질 때까지는 사람을 뽑을 수 없다. 올해까지는 채용이 어렵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불확실성에 더해 아르바이트 채용을 망설이게 하는 또 다른 이유는 오를 대로 오른 최저임금이었다. 이미 종로의 음식점·주점은 최저임금 인상률이 16.4%로 결정된 2018년부터 영업시간을 줄이기 시작했고 최근 코로나19 타격으로 점심 혹은 심야 장사를 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최근 종로 주점의 영업시간은 오후3~11시가 대세다. 휴게시간 1시간을 포함해 9시간만 일하자는 것으로 ‘교대’를 위한 인력을 줄이는 방법이다. 상인들은 3~4월에 줄인 인력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올해를 넘겨보겠다고 말했다.
종로에서 전집을 운영하는 이정훈(45)씨는 “주휴수당까지 포함하면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시급은 1만원꼴”이라며 “이전에야 종로 주점에서의 일이 힘드니 웃돈을 받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청년들이 있었지만, 요즘은 집 앞 편의점에서도 종로 주점에서도 똑같이 최저임금을 주기 때문에 사장도 청년을 고용할 생각이 없고 청년도 일할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아르바이트를 쓰겠다는 경우도 ‘주 15시간 이하’ 자리였다. 근로기준법은 주 15시간 이하의 초단시간 근로자의 경우 주휴수당 등을 적용하지 않도록 예외를 두고 있다. 인사동에서 식당을 경영하는 이모씨는 “가장 바쁜 점심시간에만 잠깐 쓸 수 있도록 주 15시간 아르바이트를 딱 한 명만 뽑을 생각”이라며 “우리뿐 아니라 다들 최저임금 부담에 ‘쪼개기 알바’를 구한다”고 말했다.
/변재현·허진·한민구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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