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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北김정은 공갈에 美트럼프 결국 흔들렸나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美워싱턴서 10월 북미정상회담說 '솔솔'

영변 폐쇄·제재 완화 시나리오까지 제기

靑은 외교안보라인 싹 바꾸며 더 바빠져

김정은은 침묵 속 대남·대미 메시지 자제

반면 주한미군 사령관은 다른 기류 발언

"北 협박 일삼아... 대규모 연합훈련 필수"

지난해 6월 판문점에서 함께 모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김정은. /연합뉴스




불과 지난달 말까지만 하더라도 일촉측발 위기처럼 보였던 북미·남북관계가 이달 들어 급속히 변화의 기류를 보이고 있다. 북한 김정은이 지난달 23일 동생인 김여정이 예고했던 군사행동을 돌연 보류하라는 지시를 내린 데 이어 미국에서도 대선 직전인 10월 추가적인 북미정상회담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북한의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로 수세에 몰리며 안절부절못하던 한국 정부에도 갑자기 훈풍이 부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북미정상회담 성사 의지를 다지며 외교안보 라인을 싹 갈아엎는 등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의 재선을 겨냥해 북한이 핵실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발사 등의 도발에 나설 것이란 가능성이 곳곳에서 제기되자 “대북 성과가 없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화 재개로 방향을 튼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분위기 반전을 위해 미국-한국-북한 간에 보이지 않는 물밑 작업이 활발히 진행 중인 상태로 추정된다.

정의용(왼쪽) 국가안보실장과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지난해 4월11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백악관 영빈관(블레어하우스)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접견을 기다리던 중 대화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워싱턴서 흘러나오는 ‘10월 서프라이즈說’

최근 미국 워싱턴 안팎에서 오는 10월 북미정상회담이 또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흘러나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 크게 뒤지고 있는 만큼 대형 이벤트를 기획하고 있다는 설이다.

최근 회고록에서 김정은에게 존재감을 과시할 기회를 줬다고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한 존 볼턴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여기에 기름을 부었다. 볼턴 전 보좌관은 지난 2일(현지시간) 뉴욕 외신기자협회 회견에서 “미국에는 선거 직전 ‘10월의 서프라이즈’라는 말이 있다”며 “트럼프 대통령이 큰 어려움에 처해 있다고 느낀다면 그의 친구 김정은과의 또 다른 회담을 ‘상황을 뒤집을 수 있는 어떤 것’으로 판단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북한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한 일을 언급하며 “북한은 이 모든 과정에 관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정확하게 보여줬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금까지 북한과 사진찍기용 행사에 시간만 낭비했다는 의견을 재차 강조한 것이다.

미국 싱크탱크인 국익연구소의 해리 카지아니스 한국담당 국장도 “지난주 워싱턴에서 북미정상회담이 가능하다는 말이 있었다”며 북한이 영변 핵시설을 폐쇄하는 대신 미국은 대북제재의 약 30%를 해제하되 북한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제재를 원상 복구하는 ‘스냅백’ 조항을 넣는 방식으로 북미가 합의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 역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영변 핵시설 폐쇄와 대북제재 일부 해제를 교환할 가능성을 거론했다. 그는 “볼턴 전 보좌관의 회고록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제재를 일부 해제하는 방안은 어떠냐고 묻는 장면이 나온다”며 “이것은 10월의 서프라이즈를 이끌 수도 있는 핵심”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같은 기관의 수미 테리 선임연구원은 10월 북한의 도발로 긴장이 더 고조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10월에 서프라이즈의 가능성도 낮지만 이것이 이뤄지더라도 실질적 합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지원(왼쪽부터) 전 민생당 의원, 서훈 전 국정원장,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백악관보다 더 바빠진 靑, 외교안보라인 대폭 물갈이

소문만 흘러나오는 백악관보다 더 바빠진 건 우리 청와대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한·유럽연합(EU) 정상회담에서 “미국 대선 이전에 북미 간 대화 노력이 한 번 더 추진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의지를 분명히 밝혔다. 실제로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달 1일 문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을 전하면서 “이 생각은 이미 미국 측에 전달됐고, 미국 측도 공감하고 있으며 현재 노력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워싱턴의 10월 서프라이즈 설이 한국의 의지에서 비롯됐을 수도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었다.

이 고위관계자는 ‘북미가 마주앉아야 한다는 것은 북미정상회담을 말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고 답했다. 미국과의 사전조율이 이뤄졌느냐는 취지의 물음에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이후에 청와대와 백악관 안보실이 긴밀하게 소통하고 있다”면서 미국 측의 공감을 얻었다고 말했다.

지난 3일 대대적인 외교안보 라인 물갈이 인사는 남북관계 회복을 위한 청와대의 강한 의지를 나타내는 하이라이트였다. 문 대통령은 국가정보원장에 박지원 전 민생당 의원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 서훈 국가정보원장을, 통일부 장관에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대통령 외교안보특보에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을 각각 내정했다. 정치력이 높은 인물들을 요직에 기용해 무너진 대북 채널을 새로 구축하겠다는 구상이 엿보이는 인사였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강경화 “정세 바뀌어... 美, 북미대화 재개 준비됐다”

여기에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우리 측 의견을 넘겼다는 청와대 입장 수준을 넘어 아예 “미국은 대화 준비가 돼 있다”고 못 박았다. 북한만 호응한다면 북미정상회담이 얼마든 재개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강 장관은 지난 2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정세 악화 방지를 위한 상황 관리에 중점을 두면서 북한의 대화 복귀를 위해 전방위적 외교적 노력을 전개해 나가겠다”며 “굳건한 대비태세를 유지하는 가운데 남북·북미 간 대화 모멘텀을 이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부장관 방한 계획과 관련해 “북미대화가 재개된다면 미국은 대화에 임할 준비가 돼 있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외교가에 따르면 비건 부장관은 이달 7일을 전후해 한국을 찾고 북한과 접촉할 계획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소식통을 인용해 비건 부장관이 이번 방한 때 한국의 중개로 판문점에서 북한과 접촉해 트럼프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달할 방침이라고까지 보도했다.

강 장관은 정부가 최근까지 ‘남북끼리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는 입장을 견지하다 최근 다시 북한과의 대화로 급선회하게 된 배경을 묻는 질문에는 “정세는 늘 유동적이고 변화하는 정세에 따라 우리의 전략도 수정해가는 것”이라며 “정부 입장이 크게 바뀌었다는 평가는 하지 않는 게 좋다”고 경고했다.

김정은. /연합뉴스


김정은은 ‘표정 관리’

청와대와 정부의 주장대로면 이제 남은 건 오직 북한 김정은의 결단뿐이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 이에 대해 별다른 반응 없이 침묵만 지키고 있다. 김정은의 군사활동 자제 지시 이후 대남 비난은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북미대화나 남북대화 재개에 대한 입장도 내비치지 않는 상태다.

특히 김정은은 지난 3일 군사행동을 보류한 지 9일 만에 정치국 회의로 재등장하고도 아무런 대남·대미메시지를 던지지 않았다. 신종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문제가 시급하다고 봤는지 이 문제에만 집중해 발언했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은 지난 2일 김정은이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14차 정치국 확대회의를 열고 코로나19 국가비상방역 문제를 토의했다고 보도했다. 노동신문은 “당중앙위원회 정치국의 위임에 따라 김정은 동지께서 회의를 사회하시고 중요결론을 하시였다”며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동지께서는 우리가 세계적인 보건위기속에서도 악성 비루스(바이러스)의 경내침입을 철저히 방어하고 안정된 방역형세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자랑스러운 성과라고 하시었다”고 보도했다. 이어 “최근 주변 나라들과 인접지역에서 악성전염병의 재감염, 재확산 추이가 지속되고 있고 그 위험성이 해소될 전망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방역전 초선이 조금도 자만하거나 해이됨이 없이 최대로 각성경계하며 방역사업을 재점검하고 더 엄격히 실시할 데 대하여 지적하시였다”고 밝혔다. 코로나19 방역 외에 이날 회의에서 남북관계를 언급했다는 내용은 없었다.

로버트 에이브럼스 주한미군 사령관. /사진제공=미 국방부


美 강온양면 전술?... 주한미군 사령관은 강경 발언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에 미묘한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는 가운데 로버트 에이브럼스 한미연합사령관은 이 같은 분위기와 전혀 다른 강경 발언을 쏟으며 긴장감을 불어넣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지난 1일 한미동맹재단과 주한미군전우회가 서울 용산 국방컨벤션에서 개최한 제6회 한미동맹포럼 초청 강연 및 질의응답 자리에서 “전구(戰區)급 한미연합훈련은 연합방위태세 유지에 필수적”이라며 대규모 연합훈련 필요성을 역설했다. 미국 현지에서 북미정상회담 설이 흘러나오는 와중에도 북한이 그토록 비난하고 싫어하는 군사훈련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그는 한미연합훈련 시행과 관련 “코로나19로 전반기 연합지휘소 훈련을 연기할 수밖에 없었고 연 2회 전구급 훈련 효과를 따라잡을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특히 6·25전쟁 당시 스미스 부대의 패배를 거론하면서 “이런 교훈을 절대 되풀이하지 않도록 적절한 무장을 갖추고 기강 잡힌 군을 유지해야 한다”며 “강도 높은 훈련을 지상과 공중에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그간 하반기 연합지휘소훈련은 ‘파잇 투나잇’에 중점을 둬야 한다고 강조해온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는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대비한 미래연합군사령부의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에 집중해야 한다는 한국군의 입장과 결이 다른 입장이다.

주한미군 철수 설과 관련해서도 그는 단호히 선을 그었다. 에이브럼스 사령관은 강연 후 질의응답에서 “그런 의혹 자체는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우리는 여전히 우리 임무와 한국 방어에 대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고 답했다. 이어 “북한 미사일 위협이 진화하고 있고 김정은이 어떤 계획이 있는지 누구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없다”며 “북한을 오랜 시간 감시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는 것은 북한은 외교적 도구로서 강압·위협·협박을 일삼는다”고 덧붙였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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