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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동성 영향력 커지는 美와 달리...韓 이자율은 통화공급 영향 제한적

<한미 국채금리 분석해보니>

미국은 '유동성' 영향력 계속 커지는데

한국은 상대적으로 통화공급 영향 작아

확장적 재정정책으로 국채공급 늘어나

한은 국고채 매입 강도가 이자율 결정할 듯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지난 3월3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금리를 인하한 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준은 15일에도 긴급 금리인하를 단행, 기준금리를 0.00~0.25%로 내렸다./서울경제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계기로 각국 중앙은행이 강력한 통화완화 정책을 추진하면서 금융시장에선 유동성이 자산 가격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꾸준히 연구가 이뤄지고 있습니다. 유동성이 이자율에 얼마나 영향을 주고 있는지도 관심사입니다. 이자율은 채권 가격은 물론이고 주가 수준과도 관련이 있는 변수기 때문입니다.

증권가에선 미국에서 유동성이 이자율에 미치는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는 데에 동의하는 모습입니다. 다만 우리나라의 경우 통화공급이 이자율을 좌우하는 힘이 상대적으로 크지 않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통화정책보다는 물가나 경제성장률 등 ‘펀더멘털’ 요인이 끼치는 영향력이 비교적 크다는 의미입니다. 미국의 경우 양적완화 정책의 ‘효과’가 나타나고 있는 반면, 비교적 보수적인 통화정책을 추진하는 우리나라에선 유동성의 설명력이 뚜렷하지 않은 것입니다. 서울경제는 IBK투자증권의 도움을 받아 펀더멘털과 유동성이 각각 우리나라와 미국 금리에 얼마만큼의 영향을 주는지 살펴봤습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를 ‘펀더멘털’과 ‘펀더멘털 외’ 요인으로 나눠 분석한 것. 펀더멘털 ‘외’ 요인이 2010년대 이후 꾸준히 음수를 나타내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말한 ‘유동성 선호이론’을 방증하는 것이다. 즉, 유동성이 커질수록 이자율이 감소한다는 뜻이다./사진제공=IBK투자증권


◇‘펀더멘털’과 ‘유동성’으로 살펴본 이자율

‘실험 대상’으론 미국 10년물 국채수익률과 한국 국고채 3년물 수익률을 썼습니다. 이를 ‘펀더멘털(fundamental)’과 ‘펀더멘털 외(non-fundamental)’ 요인으로 분해하는 것이 이번 분석의 골자입니다.

우선 ‘펀더멘털’은 실질 경제성장률(실질이자율)과 물가상승률의 합을 뜻합니다. ‘실물경제’ 영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근거는 ‘피셔방정식(Fisher Equation)’입니다. 미국 경제학자 어빙 피셔(Irving Fisher)가 제시한 것으로 거시경제학 전공자라면 반드시 접했을 식입니다. “명목이자율은 실질이자율과 인플레이션의 합”이라는 것이 골자입니다.

‘펀더멘털 외’ 변수는 명목이자율(미국 국채 10년물 이자와 한국 국고채 3년물 이자)에 ‘펀더멘털’ 요인을 뺀 값입니다. 즉, 명목이자율 중 경제성장률이나 물가 수준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을 총칭합니다. 통화정책, 국채 공급, 투자심리, 정책 변화 등을 포괄하죠. 이 부분을 ‘유동성 관련 변수’라고 봐도 좋습니다.

이때 고려해야 할 것은 ‘펀더멘털 외’ 변수가 ‘음수’로 나타나는 패턴이 일반적이라는 것입니다. 통화공급이 증가하면 화폐의 상대적인 매력도가 줄어들어 이자율이 하락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유동성 선호이론’이라고 합니다.

데이터를 보면 유동성 선호이론은 최근 10년간의 금리 추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령 미국의 경우 지난 2000~2007년 사이 펀더멘털 외 요인의 평균값이 -0.33이었는데 2010년부터 2020년 1·4분기사이엔 -1.77로 나타납니다. 한국에서도 2010년 이후 줄곧 펀더멘털 외 변수가 음수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펀더멘털 외 요인이 유동성을 대표하는 변수라고 고려하면, 이는 곧 통화공급 증가가 이자율 ‘하락’에 영향을 준다는 뜻으로 해석됩니다. 2010년대 들어 통화완화 정책이 일반화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음수값’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유동성의 영향력을 측정할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죠.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는 2000년대 후반 양적완화 정책 이후 펀더멘털 금리(사진의 회색 부분)를 밑도는 수준을 계속 나타내고 있다.통화 공급량이 늘어나면서 펀더멘털 수준보다 이자율이 더 떨어질 여지가 커진 것이다./사진제공=IBK투자증권


◇미국 국채 금리: 여실히 나타난 양적완화 효과

미국에선 유동성이 금리에 끼치는 영향력이 점차 커지고 있습니다. 실제로 2000~2007년 유동성(펀더멘털 외) 부문이 전체 이자율 결정 변수(펀더멘털 요인의 절대값과 펀더멘털 외 요인의 절대값의 합계)에서 차지하는 평균 비중은 16% 수준이었는데 2010~2017년엔 28%까지 올라갑니다. 올해 3월31일엔 이 값이 42%까지 상승했습니다.

변곡점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입니다. 벤 버냉키 당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이 2008~2012년 세 차례의 양적완화 정책을 펼치면서 시장에 막대한 돈이 풀렸습니다. 이 과정에서 ‘실물경제’보단 ‘유동성’의 힘이 더 커진 것입니다.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와 잠재성장률·잠재물가상승률 변수(펀더멘털 요인 중 추세적인 부분) 사이의 격차를 봐도 이 같은 경향이 잘 나타납니다. 가령 2000년부터 2007년까지 두 변수 사이의 편차는 평균 -0.13을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2010~2017년엔 이 값이 -1.41까지 올라갑니다.



전통 경제학 이론에 따르면 이자율은 물가상승률이나 경제성장률 같은 ‘펀더멘털’ 요인과 밀접하게 움직여야 합니다. 결국엔 이자율이 물가상승률과 동행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중앙은행이 시중에 돈을 많이 풀게 되면 유동성, 즉 ‘펀더멘털 외’ 요인이 금리를 좌우할 가능성이 커지게 될 것입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미국 사례에 대해 “과거엔 통화정책의 목표가 통화가치 안정에 있었다면 지금은 자산가격을 유지해 구매력을 유지하고 이를 통해 성장률을 안정화하는 데에 있다”며 “자산가격 안정화의 키가 유동성인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국채 금리: 큰 변화 없는 ‘펀더멘털 외’ 영향력

우리나라는 얘기가 좀 다릅니다. 우리나라에선 2000년대 이후 국내 이자율에 끼치는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일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가령 유동성 부문이 전체 이자율 결정 변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0년~2007년 26%에서 2010~2017년 33%로 소폭 증가했습니다. 오히려 지난 1·4분기엔 이 값이 28%를 나타내 전 분기(35%)에 비해 7%포인트 감소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펀더멘털 외 요인에는 채권 수급이나 투자심리 등도 포함되는 만큼 이를 100% 통화공급 관련 요인으로 볼 순 없습니다. 다만 한국은행이 비교적 전통적인 방식으로 금리 안정 정책을 추진해왔다는 점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우리나라는 전형적인 ‘소규모 개방경제’ 국가입니다. 중앙은행의 발권력이 다른 기축통화국보다 약한 가운데 수출을 통해서 국내총생산(GDP)를 늘려야 합니다. 정용택 센터장은 “한국은행은 들어오는 경상수지 흑자를 어떻게 조절해서 국내 물가를 안정시킬까에 주안점을 둔다”며 “우리나라의 유동성 부문의 원천은 경상수지에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한국 국채 3년물 금리를 펀더멘털 요인(회색 영역)과 펀더멘털 외 요인(파란색 영역)으로 나눠 분석한 것. 우리나라의 경우 펀더멘털 외 요인의 영향력이 2000년대 이후 비교적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사진제공=IBK투자증권


최근엔 재정정책과의 ‘상호 연계’가 금리 수준에 큰 영향을 줬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나라가 코로나19에 대응하는 과정에서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더 부각됐기 때문입니다. 확장적 재정정책이 강한 경우엔 채권 공급량이 늘어 국채가격은 하락(금리는 상승)할 수밖에 없습니다. 한국과 미국의 차이가 ‘통화정책’과 ‘재정정책’ 중 어디에 힘을 실었느냐에 따라서도 나타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IBK투자증권은 지난 5월 보고서를 통해 “미국 연준은 3월 초 50bp 긴급 인하를 시작으로 제로금리 도달과 각종 자산 매입 확대, 국채와 MBS(주택저당증권) 무제한 매입 및 각종 신용기구 설립 등 다양한 통화정책으로 금융시장과 실물에 개입했다”며 “반면 한국의 경우 3월 긴급 금융통화위원회로 기준금리를 50bp 인하한 이후 재정정책에 거의 의존했다”고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정부는 3월부터 4월 말까지 한 달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3차 추가경정예산까지 발표하며 직접적인 재정지원 방법을 선택했다”며 “이는 결국 자금 조달을 위한 적자국채 발행으로 이어져 채권시장의 공급 부담을 상기시켰고 결국 한국 금리는 장기 구간을 중심으로 다른 국가보다 덜 빠질 수밖에 없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주열 한국은행장./서울경제DB


◇‘펀더멘털’ 금리 수준은 계속 낮아지지만…결국 방향타는 ‘통화정책’에

경제성장률이나 물가상승률이 침체되면서 우리나라의 금리는 장기적으로 계속 떨어질 것으로 전망됩니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펀더멘털로 설명되는 금리 수준은 지난 1·4분기 기준 2.04%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했습니다. 2010년 같은 분기엔 이 값이 8.92%였던 것을 고려하면 저성장에 따른 저금리 기조는 굳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다만 최근처럼 한국은행이 기존과 비슷한 수준의 통화정책을 펼친다면 금리 하락폭은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서두에도 언급했듯이 유동성이 이자율과 반비례 관계를 보이는 패턴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경우 코로나19를 계기로 더 공격적인 통화 완화 정책을 추진했던 만큼 이자율 하락 추세가 더 강해질 것으로 점쳐집니다.

역으로 보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유동성 정책을 펼치는 나라일수록 이자율 하락폭이 제한적일 가능성이 높다는 뜻입니다. 이는 최근 한·미 금리 추이에서도 비교적 잘 나타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옵니다. IBK투자증권에 따르면 지난 5월 기준 한국의 10년물 금리는 코로나19 전후로 20bp 가량 떨어진 반면 미국 10년물 금리는 110bp 가량 떨어졌습니다.

결국 한국은행의 통화정책 기조가 우리나라의 ‘상대적인’ 이자율 수준을 결정할 것으로 보입니다. 단기적으론 올해 세 차례에 걸쳐 총 59조원 수준의 추경이 이뤄지면서 이와 관련한 국고채 물량을 얼마나 소화할지 주목됩니다. 국고채 물량이 늘어나면 국채 가격은 하락하는데, 한국은행이 이를 매입하면 그만큼 시중에 유동성이 풀려 금리는 하락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용택 센터장은 “1·4분기에 비해선 통화완화가 늘었지만 데이터 상에선 우리나라의 펀더멘털 외 변수가 크게 변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며 “경상수지 흑자폭이 조금 줄어든 가운데 한국은행의 기여폭이 늘면, 우리나라 숫자는 미국과는 달리 크게 안 바뀐 상태에서 유지되는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심우일기자 vita@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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