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과 경기에 이어 서울과 부산에서도 수돗물 유충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잇따르면서 ‘수돗물 포비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나서 전국 정수장에 대한 긴급점검을 지시했지만 인천을 제외하고는 정확한 유입 경로가 밝혀지지 않아 국민들의 불안감은 오히려 커지고 있다.
20일 서울시에 따르면 서울 중구의 한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김모씨가 지난 19일 오후11시께 욕실에서 유충 한 마리가 나왔다며 중부수도사업소와 오피스텔 관리사무실에 신고했다. 유충은 욕실 바닥에서 발견됐으며 머리카락 굵기에 길이는 1㎝가량인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는 이날 오후 해당 오피스텔의 수돗물 시료를 검사한 결과 수도관로를 통한 유입이 아니라 배수구에서 유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지하 저수조를 사용하는 해당 건물이 준공 15년을 넘었고 한 달 전에도 유사한 벌레가 발견됐다는 점을 근거로 제시했다. 앞서 서울시는 환경부와 합동으로 서울 정수센터 6곳과 배수지 101곳을 전수 조사했지만 유충을 발견하지 못했다.
서울시 관계자는 “해당 오피스텔의 다른 세대에서 추가적인 유충 민원신고가 없었고 급수계통을 전수조사한 결과 유충이 나오지 않았다”며 “현재로서는 수도관로가 아닌 위생 불량 등 외부 요인을 통해 유충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서울에서 발생한 첫 수돗물 유충이 일단 상수도 관리체계 부실과는 관련이 없는 것으로 확인됐지만 아직 안심하기에는 이르다는 지적이다. 수돗물 유충 사태가 전국적으로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16일에는 경기 시흥시의 아파트에서 유충이 나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시흥시 하상동의 한 아파트에 사는 주민 정모씨는 세면대에서 수돗물을 틀었는데 유충이 나왔다”며 “4∼5㎜ 크기의 유충이 살아 움직였다”고 신고했다. 전날 오후에는 경기 파주시 운정신도시의 한 아파트에서도 유충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왔고 이날 오전에도 경기 안양시 박달동의 아파트에서 유충이 나왔다는 신고가 접수됐다.
수도권에 국한됐던 수돗물 유충 사태는 부산으로도 번졌다. 부산시는 14일부터 전날까지 유충을 발견했다는 신고가 11건 접수됐다고 밝혔다. 이 중 4건은 모기·파리·깔따구 유충으로 확인됐다. 부산시는 일단 수돗물 공급과정에서 유충이 유입된 것이 아니라 가정 내 배수구나 저수조에서 유충이 발생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수돗물 유충이 처음 발견된 인천시의 유충 민원신고도 다시 늘고 있다. 인천시에 따르면 18일 오후6시부터 19일 오후6시까지 수돗물 유충 관련 민원신고가 46건 접수됐다. 서구 지역이 19건으로 가장 많았고 부평구 8건, 계양구 6건, 영종도 3건, 강화군 2건 등이었다. 9일 수돗물 유충 민원신고가 처음 접수된 후 17일 168건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뒤 이튿날 38건으로 감소세에 접어들었다가 다시 늘었다.
앞서 인천시와 환경부는 전날 부평구와 계양구 등지에 수돗물을 공급하는 부평정수장과 부평권역 배수지 3곳의 활성탄 여과지에서 죽은 깔따구 유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수돗물 유충 사태와 관련해 유입 경로가 확인된 첫 사례다. 지난해 5월 ‘붉은 수돗물’ 사태 이후 1년여 만에 수돗물에서 유충이 발생하자 인천시의 안일한 대응이 도마 위에 오르고 있다.
한편 정 총리는 이날 조명래 환경부 장관에게 전화를 걸어 “지자체 및 담당 기관과 협력해 신속히 원인을 조사하고 진행상황을 국민에게 투명하게 알려 불안감이 증폭되지 않도록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정 총리는 이어 “전국 정수장 484개소에 대한 긴급점검도 조속히 추진해 다른 지역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선제적으로 대응하라”며 “국민들이 신뢰할 수 있는 수돗물이 될 수 있도록 철저한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주문했다.
/이지성기자 engin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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