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주도로 열린 화상회의에서 국제사회가 대규모 폭발 참사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레바논 국민에 약 3,500억원을 직접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원조를 약속하며 힘을 보탰다. 한편 폭발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레바논 장관들이 잇따라 사의를 밝힌 가운데에서도 레바논 시위대는 의회 진입을 시도하며 시위는 날로 격화되고 있다.
9일(현지시간)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행정부는 이날 레바논을 위한 긴급 국제 화상회의에서 국제사회가 2억5,500만유로(약 3,571억원)에 달하는 지원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주도로 열리고 트럼프 미국 대통령, 미셸 아운 레바논 대통령, 세계은행, 유엔(UN), 국제적십자사 관계자 등이 참석한 회의에서 이들은 “레바논인의 필요를 충족하는 방향으로 충분히, 적시에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는 이번 지원이 레바논 정부를 거치지 않고 국민에 직접 행해질 것이라고 약속했다. 레바논 정부의 부정부패를 척결하라고 요구하는 반(反)정부 시위가 확산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한 결과다. 이날 AP통신도 “레바논은 돈이 자주 없어지고, 사회기반시설 사업이 불투명하게 진행되며 당국이 회계장부를 공개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 높은 나라”라며 “피해 복구가 절실하지만, 구호자금이 곳곳에서 전용되지 않도록 하는 방안 마련도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지원을 약속하는 동시에 투명한 진상조사를 요구했다. 이날 백악관은 성명을 통해 미국이 레바논을 돕기 위해 계속 지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밝히면서 “시위대의 투명성, 개혁, 책임에 대한 정당한 요구를 인정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레바논 참사에 대한 투명한 진상조사를 요구한 것이다.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도 이날 화상회의에서 “IMF는 레바논 지원 노력을 강화할 준비가 돼 있다”면서도 “레바논의 모든 기관이 협력해 필요한 개혁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개혁 방안으로 국가 부채상환역량 및 금융시스템 안정성 회복, 자본유출을 막기 위한 일시적인 안전조치 마련 등을 언급했다. 게오르기에바 총재는 레바논 정부가 이런 개혁을 확약하면 레바논 국민을 위한 수십억 달러 규모의 구제금융이 지원될 것이라고 밝혔다. 레바논 정부는 지난 5월부터 IMF와 금융 지원에 관한 협상을 벌이고 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편 레바논 장관들은 잇따라 자진 사퇴 의사를 밝히고 있다. 이날 다미아노스 카타르 환경장관은 폭발 참사에 대한 책임을 지고 희생자들에 대한 연대의 의미로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이어 레바논의 통치 체제가 “무기력하고 무익하다”고 비난하면서 “여러 개혁 기회를 망쳐버린 현 정권에서 마지막 희망을 잃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압델-사마드 공보장관도 이날 “국민의 염원에 미치지 못했다”고 사과하며 국민의 변화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사퇴한다고 밝혔다.
고위직 인사의 줄사퇴에도 레바논 반정부 시위대는 의회 진입을 시도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시위가 격렬해지며 총을 든 무장 군인이 시위대 진압에 투입, 충돌과정에서 부상자가 속출했다. 지금까지 300명 가까운 부상자가 발생했고 경찰관 1명이 숨진 것으로 전해졌다.
/곽윤아기자 o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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