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판’된 미술관? 큰일이다. 미술관이, 그것도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이 개판이 되다니, 큰일이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다. 전시 관람의 주인공이 바로 개이기 때문이다. 개를 위한 전시. 정말 획기적인 기획이다. 반려견과 함께하는 미술관 산책, 이를 실현시킬 수 있는 전시, 그것이 바로 ‘모두를 위한 미술관, 개를 위한 미술관’ 전시이다. 정말 미술관이 개를 위한 전시를 마련했다고?
반려동물을 키우는 집의 숫자가 늘고 있다. 현재 한국 가구의 30%는 반려동물을 기르고 있다. 국민의 과반수는 반려동물을 길러 본 경험이 있다. 더불어 반려동물 시장의 활황도 눈부시다. 사료 시장 역시 매년 급성장해 1조원 규모를 보이고 있다. 반려동물은 개와 고양이가 대부분이지만, 그래도 개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개는 사람과 같이 산책이 가능한 동물이지만 고양이는 산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고양이를 위한 전시는 만들기 어렵다.
산책은 중요하다. 사람뿐만 아니라 개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그런가. 일본 기업 소프트뱅크는 반려견 산책대행 사업에 수천억원을 투자했다. 호주 같은 나라에서는 동물 복지 차원에서 법으로 개 산책을 의무화했다. 하루에 2시간 이상 개를 산책시키지 않으면 벌금을 낸다. 사실 산책을 많이 한 개는 수명이 길어진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누구랑 산책하는가. 사람과 개. 산책길에서 개와 만나는 것은 일상의 풍경이다. 개는 땅을 보면서 걷는다. 신체 구조상 하늘을 볼 수 없다. 머리를 숙이고 걷는 개. 그런데도 목적지를 잘 찾아간다.
출품작 가운데 영웅견이라 할 수 있는 토고와 발토도 있다. 이들 개는 1925년 알래스카의 혹한 속에서도 전염병이 도는 외딴 마을을 위해 면역 혈청을 운반해준 ‘영웅’이었다. 얼마나 위대한 업적을 이룩했는지 오늘도 뉴욕 센트럴파크에서는 발토의 동상을 볼 수 있다. 전염병으로부터 사람을 구해준 개. 사력을 다해 질주했던 개들의 위업, 정연두 작가는 개가 좋아하는 사료로 입체작품을 만들었다. 코로나 바이러스 난국에 발토와 같은 개가 사뭇 그리워진다.
반려동물이 늘어가고 있는 한국. 미술관은 획기적인 전시를 시도한다. 발상의 전환, 가끔은 거꾸로 세상보기. 미술관은 사람만을 위한 시설인가. 가족과 같은 애완견은 늘고 있는데 개를 위한 미술관이라면 어떨까. 발상법의 대전환은 미술관을 ‘개판’으로 만들어보도록 이끌었다. 그래서 개를 연구했고, 관련 작가와 작품을 한자리에 모았다. 적색과 녹색 색맹인 개를 위해 색채를 안배하는 등 개의 특성을 감안해 전시를 꾸몄다. 하지만 개판된 미술관을 질투하는 코로나 바이러스는 미술관 문을 닫게 했다. 안타깝고 안타까운 일이다. 전염병으로부터 사람을 구해준 영웅견 토고와 발토를 생각하며 언젠가 다시 문 열 미술관을 희망해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