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의료진이 머리뼈를 절개하지 않고 고집적 초음파로 ‘치료저항성 우울증’을 치료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22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에 따르면 김찬형(정신건강의학과)·장진우(신경외과) 교수와 한양대 의대 명지병원 장진구(정신건강의학과) 교수팀은 여러 치료방법에도 효과를 보지 못했던 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 4명에게 ‘고집적 초음파 뇌수술’을 한지 1년 넘게 큰 합병증 없이 우울 증상 개선 효과가 유지되고 있다.
4명은 2015~2018년 세브란스병원에서 우울증으로 치료받은 환자 가운데 3개 약물 병합치료 및 전기경련치료(ECT)에도 증상이 호전되지 않던 이들이다. 이런 환자들에게 기존에는 머리뼈에 구멍을 내고 뇌 깊숙이 탐침을 집어넣고 우울·강박 증상을 일으키는 뇌 회로 부위(대뇌반구 중심부 신경다발의 피막)에 열을 가해 괴사시키는 방법을 썼다. 하지만 수술 후 환자의 52%가 섬망 등 일시적 부작용을, 21%가 뇌출혈·요실금·두통 등 영구적 부작용을 경험한다는 연구가 있다. 감염 위험도 있다.
반면 새 치료법은 머리뼈에 구멍을 내지 않고 이스라엘 기업 인사이텍(Insightec)의 자기공명 유도 고집적 초음파 장비인 ‘엑사블레이트 뉴로’(Exablate Neuro)를 이용했다. 1,000여개의 초음파(출력 650㎑) 발생장치에서 나오는 초음파를 표적 부위 뇌 피막에 집중시켜 50~60℃ 수준까지 열을 가해 괴사시킴으로써 우울·강박 증상을 일으키는 뇌 회로를 끊어주는 방식이다. 의료진이 자기공명영상(MRI)을 활용해 치료 부위를 실시간으로 살피기 때문에 오차 범위가 1㎜ 이내에 불과하다. 출혈·감염 위험이 없고 짧은 시간에 정확한 수술이 가능하다. 경과를 지켜본 뒤 다음 날 퇴원할 수 있다.
4명의 환자는 수술 1주일, 1개월, 6개월, 12개월 뒤 객관적·주관적 우울증평가(HAM-D와 BDI)를 받고 신경학적·신경정신학적 검사, MRI 검사 등도 시술 후 최대 12개월까지 받았다. 합병증이나 인지기능 저하 소견은 관찰되지 않았고 치료 전보다 12개월 후 객관적 우울증평가 점수가 83%, 주관적 우울증평가 점수가 61% 하락했다.
우울증은 삶의 질을 떨어뜨리는 정신질환으로 지난해 79만6,360여명이 건강보험 진료를 받았다. 이는 2015년 60만1,150여명보다 33% 증가했다. 약물·심리치료에도 불구하고 치료저항성 우울증으로 악화하는 경우가 흔하다.
김찬형 교수는 “MRI 유도 고집적 초음파를 이용한 치료저항성 우울증 치료는 머리뼈를 절개하는 기존 방식과 달리 짧은 시간에 정확한 수술이 가능하고 출혈·감염 위험, 단기·장기적 부작용이 없다”고 설명했다.
미국 초음파연구재단의 지원으로 진행된 이번 연구결과는 국제학술지 ‘양극성장애’(Bipolar disorders, 영향력지수 5.41)에 발표됐다.
연구팀은 앞서 강박증 환자를 대상으로 고집적 초음파 치료의 효과와 안전성을 확인했다. 장진구 교수는 “우울증 환자의 10%가량이 장기적으로 치료저항성 우울증으로 진행될 수 있다”며 “다수의 강박증·치료저항성 우울증 환자들을 대상으로 어떤 환자에게 고집적 초음파 치료가 효과적인지 등을 추가로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웅재기자 jae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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