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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과 닫힘…일상품의 거대화…예술이 된 '02와 H2O'

■'MMCA 현대차 시리즈' 세계적 미술가 양혜규展

냄새·소리 등이 자유로운 블라인드

문화적 맥락에서 다시 본 일상 용품…

'공기와 물' 의미 초월한 작품들 선봬

미술관 재개관 맞춰…내년2월까지

MMCA현대차시리즈 2020 작가로 선정된 작가 양혜규. /사진제공=현대자동차




지난 2002년 현대미술가 양혜규(49·사진)가 선보인 작품명이자 전시 제목은 ‘공기와 물(Air and Water)’이었다. 아이디어를 얻은 곳은 주유소였다. 타이어 공기를 주입하고 워셔액을 채워 넣는 구역을 가리키는 주유소 한 구석 표지판에 이 문구가 적혀있었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부터 시작된 세상을 이루는 5원소 중 일부로 등장할 것 같은 단어들이 주유소에서는 달리 보였다. 일상 속에 있지만 통상적인 언어사용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그 상황이, 주유소 안에서는 당연하나 다른 곳에서는 다른 문맥을 형성할 그 단어가 작가에게는 의미심장하게 읽혔다.

18년이 지난 2020년, 국립현대미술관과 현대자동차가 공동 주최하는 ‘MMCA 현대차시리즈 2020’의 작가로 선정된 양혜규는 대규모 개인전의 제목을 ‘O2 & H2O’로 붙였다. 긴 시간을 돌고 돌아 다시 만난 공기와 물이지만 어감은 사뭇 다르다. 과거의 ‘공기와 물’이 문화적 맥락에서 다시보기를 청했다면 화학 분자식에서 가져온 O2와 H2O는 문화를 초월해 절대적인 명확성을 추구하는 듯하다. 혹은 언어적 한계를 초월한 언어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국경을 초월해 전 세계를 누비며 활동하는 작가 자신처럼.

양혜규는 권위 있는 영국 현대미술잡지 아트리뷰가 선정한 ‘세계 미술계 파워100’ 중 한국인으로는 역대 최고 순위인 36위에 이름을 올린 작가다.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 등 세계 주요 미술제를 섭렵했고, 지난해 10월 대대적인 리모델링 후 재개관한 뉴욕현대미술관(MoMA)의 가장 눈길 끄는 공간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당시 글렌 로리 모마 관장이 “미술관 대표작인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을 보러 온 관객들이 떠날 때는 양혜규 작품에 가슴 뛸 것”이라 했던 말은 틀리지 않았다.

“공기와 물이 O2와 H2O가 되는 동안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언어라는 게 소통을 위한 것이지만 왜곡을 일으키기도 하죠. 예전에는 정치·경제·사회적인 게 중요했다면 이제는 과학기술이 중요한 사회로 변화했다든지, 인종과 환경문제가 중요합니다. 그렇다고 이전의 것이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닌지라 축적되고 여전히 유효한 문맥들입니다.”

전시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휴관했던 미술관이 재개관한 28일 공개됐다. 작가는 전시 제목에 집착하지 말고 마음가짐을 위한 참조용으로 읽어달라고 했다. “실제 전시장에는 공기나 물이 직접 등장하는 작품이 없다”는 설명과 함께.

양혜규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중심부 격인 서울박스에 블라인드를 이리저리 배치한 대형 설치작품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이 먼저 관객을 맞는다. 빛·냄새·소리 등의 차단과 교류가 자유로운 이중적 역할의 블라인드는 작가의 오랜 소재가 됐다. 작품 주변을 돌며 ‘열림과 닫힘’을 관찰하는 게 묘미인 작품이다.

서울관 5전시실 안쪽에는 지난해 뉴욕 전시에서도 주목받았던 ‘소리나는 가물(家物)’ 연작을 만날 수 있다. 한국의 무속, 유럽의 이교도 전통 등 동서고금이 다양하게 이용해 온 방울을 소재로 가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품을 사람 만한 크기로 확장한 작품이다. 젖은 빨래를 겨우 지탱하는 빨래건조대는 수평부를 맞대고 겹쳐 방울로 뒤덮이니 견고함과 엄격함마저 느껴진다. 세탁물 말리는 임무를 끝내는 즉시 접혀 보이지 않게 숨겨지는 본래의 모습과는 사뭇 다르다. 조개집게, 헤어드라이어, 다리미, 주전자형 냄비 등은 마법처럼 커졌다. 설 수 있게 하려고 두서너 개씩 붙이니 흡사 메두사 같은 형상으로 변하기도 했지만 생명을 가진 새로운 종(種)으로 보이기도 한다. 작가는 “기능으로 쓰이는 물건들의 몸집을 키워 인간과 맞짱 뜨는 기물이 되게 했다”면서 “물리적인 확대가 의미의 증폭을 가져오니 비로소 우리는 진지하고 심각하게 이들을 바라보고 교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쉽게 보던 것들의 묵직한 의미는 인종, 젠더, 출신에 대한 편견을 반성하게 한다. 전시 전문가는 한 번씩 이들 조각을 움직이게 해 ‘차르르’ 방울 소리를 들려준다.

양혜규 ‘소리나는 가물’ 설치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세계 곳곳에서 선보인 바 있는 대표작 ‘솔르윗 뒤집기’는 블라인드의 조합으로 이뤄낸 독특한 추상작품이며, 인조 짚을 재료로 한 ‘중간 유형’ 등은 민속과 수공예에 대한 고민과 함께 다양한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갤러리 복도에서는 작가의 목소리를 딥러닝한 인공지능 목소리가 정체성과 유일함 등 진정성 있는 가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 역시 ‘진정성 있는 복제’라는 제목의 작품이다. 전시에 발맞춰 출간된 양혜규의 국내 첫 한국어 선집 ‘공기와 물: 양혜규에 관한 글모음 2001-2020’에는 그의 난해한 작품세계를 이해하도록 돕는 일종의 사전도 포함됐다. 전시는 내년 2월 말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

‘MMCA현대차 2020’ 작가로 선정된 양혜규의 전시 ‘O2&H2O’ 전경. /사진제공=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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