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쌓는 자는 망할 것이요, 길을 내는 자는 흥할 것이다.”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기존 금융사와 빅테크 간 대화의 자리에서 돌궐제국의 재상이었던 톤유쿠크의 격언을 인용했다. 데이터 개방, 운영비용 등에서 핀테크에도 기존 금융사와 같은 수준의 협조를 촉구하는 취지에서다. 그동안 금융사와 핀테크와의 갈등에서 핀테크 편을 들어오던 금융당국이 ‘기울어진 운동장’ 논란을 풀기 위해 나섰다는 해석이 나온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21일 제3차 디지털금융협의회를 열고 오픈뱅킹 고도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 손 금융위 부위원장은 “오픈뱅킹의 개방적인 인프라가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기존에 참여하는 기관과 새로 참여하는 기관 간에 윈윈하는 관계정립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금융회사와 핀테크 부문이 상호호혜적 관계를 가지도록 데이터 공유범위, 수수료 부담 등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겠다”고 언급했다.
오픈뱅킹이란 하나의 애플리케이션으로 고객이 가진 계좌를 조회하고 출금이체 등을 할 수 있는 서비스다. 금융당국은 은행의 계좌 잔액, 거래 내역 뿐만 아니라 네이버페이·토스머니 등 선불전자지급수단의 잔액, 거래 내역 등도 오픈뱅킹으로 조회가 가능하도록 핀테크에 데이터 개방을 촉구했다. 최근 선불전자지급수단을 충전해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진데다 고객 입장에서는 은행 계좌나 00페이나 큰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나아가 금융당국은 오픈뱅킹망의 구축, 운영비용에도 핀테크 기업의 참여를 주문했다. 지금까지는 오픈뱅킹망 운용비용을 은행권에서 부담했는데 이를 핀테크에도 일부 부담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한 것이다. 금융당국이 혁신에 집중해 과도하게 핀테크 편을 든다며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던 금융사를 달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이와 함께 오픈뱅킹의 문호를 더 개방하는 작업도 추진 중이다. 금융당국은 오는 12월부터 농협·새마을금고·증권사 등 상호금융·금융투자회사 등으로 오픈뱅킹 참여사를 확대한다. 수신계좌가 없는 카드사는 내년 상반기 중 참여할 예정이다. 오픈뱅킹 이용 가능 계좌도 현재 입출금이 자유로운 요구불예금에서 예·적금 계좌로 확대됨에 따라 예·적금 잔액을 다른 금융사로 옮기는 게 더 자유로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손 부위원장은 “은행, 핀테크 기업 등 오픈뱅킹 참여기관을 빠짐없이 포함하고 운영기관·보안점검기관 등이 참여하는 ‘공동 협의체’를 신설해 데이터 공유범위, 수수료 수준 등 참여사 간 이견을 해소하는 기구로 운영해나가겠다”며 “정부는 혁신을 촉진하기 위한 제도 개선, 인프라 구축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강조했다.
/김지영기자 jik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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