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예산안 시정연설을 하기 위해 28일 국회를 찾은 문재인 대통령이 정문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문 대통령의 시선이 향한 곳에는 작업복과 안전모를 착용한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피켓을 든 채 서 있었다. 류 의원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을 촉구하기 위해 1인 시위에 참여하고 있었다. 이런 류 의원을 바라보며 문 대통령은 흐뭇한 미소를 지은 채 멀리서 손 인사를 건넸다.
이날 오전 9시 40분께 여의도 국회에 도착한 문 대통령은 레드 카펫을 따라 걸어가던 중 1인 시위에 나선 류 의원을 발견했다. 류 의원은 정문에 도착한 문 대통령을 향해 “대통령님 안녕하십니까? 정의당 류호정 의원입니다”라고 외쳤다. 문 대통령이 알아보자 류 의원은 “김용균 노동자를 기억하십니까? 중대재해기업처벌법 제정 잊지 말아주십시오!”라고 말을 이었고, 문 대통령은 손 인사를 건넸다. 문 대통령은 발열 체크와 손 소독 중에 류 의원을 바라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류 의원은 이날 2년 전 충남 태안화력 하청업체 비정규직으로 일하다 숨진 김용균 노동자의 작업복과 헬멧을 착용했다. 류 의원은 지난 15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한국전력공사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도 작업복을 착용해 이목을 끈 바 있다.
이날 그의 손에 들려 있던 피켓은 김용균 노동자가 사고 발생 열흘 전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을 촉구하면서 들었던 피켓이었다. 피켓에 적힌 문구는 ‘문재인 대통령, 비정규직 노동자와 만납시다’로 시작했다. ‘나는 화력발전소에서 석탄설비를 운전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입니다’라는 김 노동자의 자필 글씨도 적혀있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정의당이 내놓은 ‘1호 법안’이다.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대표 발의했다. 산업 재해가 발생했을 경우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주된 골자다. 구체적으로는 사업주가 유해위험 방지 의무를 위반해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면 3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사업주의 책임 수위를 높이는 만큼 경영계는 해당 법률이 통과될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며 우려를 표하고 있다.
한편 문 대통령은 이날 2021년 예산안의 성격을 ‘위기의 시대를 넘어 선도국가로 도약하기 위한 예산’으로 규정했다. 문 대통령은 “내년부터 우리 경제를 정상적인 성장궤도로 올려놓기 위해 본격적인 경제활력 조치를 가동할 때”라며 확장적 재정운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문 대통령은 “국민의 삶을 지키고 국가의 미래를 열기 위해, 재정의 역할이 더욱 막중해졌다”며 “정부는 내년도 예산을 국난극복과 선도국가로 가기 위한 의지를 담아 555조8,000억 원으로 편성했다”고 밝혔다.
/허세민기자 sem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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