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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천하를 호령하듯...바위산 기개 솟아오르다

■단풍이 진 후 더 멋진 영암 월출산

국내 3대 악산 중 '산의 기세' 최고봉

'1,000번 정상 가면 군수 된다' 속설도

구름다리→경포대능선 고난도 등산 코스

칼날처럼 쭉쭉 뻗은 봉우리 절경 뽐내

월출산 구름다리. 이곳을 지나면 급경사의 철계단이 이어진다. 힘들긴 하지만 아름다운 풍광이 펼쳐진다.




취재를 위해 남도로 길을 떠나면 언제나 기자를 맞아주는 산이 있다. 목포나 나주를 거쳐 전남 영암군으로 진입하면 초입에 우뚝 서 있는 월출산이 바로 그 산이다. 평야가 펼쳐진 남도를 차로 달리다 마주하는 월출산의 기세는 칼날처럼 날카롭다. 이다지도 순하게 펼쳐진 대지 위로 어쩌다 칼날 같은 봉우리가 솟아올랐는지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근처를 지날 때마다 ‘꼭 한 번 올라봐야지’라는 생각을 하며 지나쳤는데, 드디어 그 날이 왔다. 12월이라고는 하지만 아직 눈 소식은 멀었고, 단풍은 모두 떨어져 여행기자의 카메라 렌즈에 담을 풍광이 사라졌으니 이맘때면 오히려 돋보이는 바위산인 월출산에 구미가 당겼다.

오전 6시 반에 여관을 나서니 사방이 깜깜하다. 천황봉 주차장을 뒤로하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 초입의 입간판에는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월출산을 ‘화승조천의 지세(火乘朝天地勢)’라고 표현했다. 그 뜻은 ‘아침 하늘에 불꽃처럼 내뿜는 기(氣)를 지닌 땅’이라는 의미다”라고 적혀 있다. 높은 바위산은 어느 곳이든 대개 ‘기(氣)가 세다’는 속설이 있는데 월출산도 예외는 아닌 듯싶었다.

새벽 어둠이 가시기 전 천황봉 주차장에서 바라본 월출산.


산악인들은 우리나라 3대 악산을 설악산·주왕산·월출산으로 꼽는데 그중에서도 월출산의 기가 가장 세다는 것이 통설이다. 기가 세다는 것은 영험한 기운이 있다는 의미와도 통해서 근처에는 복을 비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한때 영암에서는 월출산 정상을 1,000번 이상 올라가면 영험한 기운을 받아 군수가 된다는 속설이 있었다. 그래서 군수가 꼭 되고 싶던 부군수가 월출산을 열심히 올라갔는데 끝내 군수가 되는 데는 실패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상에 오른 횟수를 세어보니 999차례였다는 믿기 힘든 얘기가 있을 정도다.

하지만 월출산에 1,000번을 오를 정도의 꿈이 있다면 월출산에 오르지 말고, 그냥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맡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게 나을 듯싶다. 왜냐고? 월출산 정상 천황봉에 오르는 것은 엄청 힘들기 때문이다.

통천문은 글자 그대로 정상으로 통하는 문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문을 나서면 다시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해발고도 812.7m라는 스펙만 놓고 보면 월출산의 주봉 천황봉은 그다지 높은 봉우리가 아니다. 심지어는 바로 옆에 있는 구정봉을 주봉우리로 보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니까.

그러나 강원도의 고산들을 오를 때 시작점이 해발 수백m 이상은 되는 데 비해 월출산은 겨우 해발 100m에서 시작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에서 설치한 입간판을 보니 천황봉 주차장에서 시작해 구름다리→사자봉→경포대능선삼거리로 오르는 코스는 최고난도의 험한 코스라고 적혀 있다. 아직 상황의 심각성을 모르는 기자는 이때만 해도 ‘그래 봤자 3.9㎞’라며 코웃음을 쳤었다. 그런데 구름다리를 지나면서부터는 생각이 달라졌다. 철계단이 있지만 워낙 가팔라 뒤를 돌아보기가 겁이 날 정도인데다, 올라온 거리가 아까워 내려갈 수도 없다. 이 철계단을 겨우 오르면 그다음부터는 다시 급경사의 내리막길이 시작된다.



아! 아직 한참 남은 등산길에 내리막길이 나오면 어쩌란 말이냐? 그만큼 다시 올라가야 하는데….

천황봉 정상의 표지석.


어쨌거나 구름다리→사자봉→경포대능선삼거리는 겨울철이면 미끄럼 사고 등이 잦아 아예 폐쇄되는 코스다. 롤러코스터를 타듯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오른 끝에 드디어 하늘로 통한다는 통천문에 다다랐다. ‘이제 여기만 지나면 정상이구나’라고 생각했는데 문을 나서자 또 내리막길이다. 그나마 이번 내리막길은 마지막이었다. 정상에 오르니 사방이 트여 있다. 멀리 서쪽으로는 구정봉과 큰바위얼굴이 내려다보였다. 천황봉과 구정봉의 표고 차는 100m밖에 안 되는데 상당히 아래쪽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방이 트인 천황봉 정상에는 바람이 세게 불었다. 잠깐 쉬면서 물을 마신 후에 바람폭포 쪽으로 하산길을 잡았다. 바람폭포 쪽은 올라온 길보다 700m 정도 짧은 코스인데다 경사도 덜해 그저 아래를 향해 걷기만 하면 된다.

육형제바위는 바람폭포 코스에 있다. 여섯 명의 형제가 나란히 서 있는 형상이다.


하지만 이 코스 역시 올라올 때는 만만치 않을 듯싶었다. 아닌 게 아니라 산 아래에 세워진 국립공원관리공단 표지판에는 이 코스 역시 ‘고난도’로 분류돼 있다.

월출산은 보이는 것처럼 기세등등한 산이다. 하지만 거친 만큼 도전해볼 만한 산이다. 게다가 얼마 후 겨울이 오면 구름다리 코스는 폐쇄된다고 하니 등산 마니아라면 늦기 전에 올라보길 권한다. /글·사진(영암)=우현석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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