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중순의 뉴욕 미술계는 ‘아시안 아트 위크(Asian Art Week)’다. 글로벌 경매회사 크리스티 뉴욕이 다음 달 16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 고미술 경매’를 시작으로 남아시아·인도·중국 고미술 등을 순차적으로 19일까지 진행하기 때문이다. 이 경매에 오르는 한국 고미술 주요 출품작인 조선시대 도자기 3점이 한국 나들이를 한다. 크리스티 코리아는 뉴욕에서 열릴 경매를 앞두고 오는 24~26일 종로구 팔판동 사무소에서 서울 프리뷰를 진행한다고 21일 밝혔다.
세월의 때가 묻었음에도 범상치 않은 자태로 눈길 끄는 유물은 ‘청화백자추초문호’(이하 추정가 2억2,000만~3억8,000만원)다. 높이 36.2cm의 청화백자로 큰 연회에서 꽃장식 용도로 쓰였을 것이라 추정된다. 부드럽게 굴곡져 아래로 내려갈수록 좁아지는 한국 고유의 도자기 형태를 갖고 있다. 항아리 아래쪽에 은빛 도는 옅은 청화로 선을 두른 후, 그 위에 가는 붓으로 그림을 그리듯 꽃을 표현했다. 둥근 몸체의 사방에 원을 그리고 수복강녕의 네 글자를 적어 꽃과 조화를 이룰 뿐만 아니라 길상의 의미까지 담았다. 수(壽)와 복(福) 사이에는 난초, 복과 강(康) 사이에는 패랭이꽃, 강과 녕(寧) 사이에는 수선화, 녕과 수(壽) 사이에는 국화 장식이 그려져 있다.
연꽃 봉오리 형태의 뚜껑 손잡이부터 얕은 돔 모양의 뚜껑과 그릇까지 완벽한 곡선미를 자랑하는 ‘백자유개호’(2억7,000만~3억3,000만원)는 별스런 문양 하나 없이 단아한 형태와 유약의 아름다움 만으로도 돋보인다. 전체 높이는 31.1cm 이며 음식물 저장 용기로 추정된다. 그릇 위쪽을 막거나 안쪽에 끼우는 마개가 아닌, 항아리 입구 부분을 온전히 덮는 형태의 뚜껑이다. 크리스티 코리아 측은 “제작 과정에서 도자기와 뚜껑을 각각 구울 수 있었기에 도자기 구부(口部)까지도 유약 처리가 됐다”면서 “도자기의 보다 많은 부위에 유약처리가 가능해짐에 따라 시각적 아름다움이 더 완벽해졌고 가마터의 효율성과 수익성도 높아졌다”고 설명했다.
몸통 양면이 살짝 편평하게 눌린 ‘분청사기철화초화문편병’(1억6,000만~2억2,000만원)은 술병으로 사용됐을 가능성이 높다. 편평한 한쪽 면은 백자다운 깔끔함으로 무늬 없이 남겨뒀으나 다른 한쪽 면에는 붉은 갈색을 내는 철안료로 굽이굽이 이어지는 초화문(풀꽃무늬)을 그린 후 회청색이 가미된 투명한 유약 처리를 했다. 구불거리는 가는 줄기, 잎자루가 피침 모양의 세 갈래로 갈라진 잎, 다른 꽃이나 나뭇잎이 전혀 없다는 특징 등을 통해 인삼 잎으로 추정할 수 있다.
경매, 해외 유출 문화재의 寶庫
이 같은 해외 미술경매는 종종 의외의 보물창고 역할을 한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상당량의 우리 문화재가 해외로 반출됐고, 2014년 이후 연간 2,000건 이상의 우리 문화재가 경매시장에서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최근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공개된 김홍도 화풍의 조선 후기 ‘호렵도’는 지난해 9월 크리스티 뉴욕 경매에서 환수된 유물이다. 현존하는 가장 우수한 수준의 호렵도를 두고 당시 치열한 경합이 벌어져 낮은 추정가의 9배가 넘는 약 11억원(수수료 포함 93만 달러)에 낙찰됐다. 같은 경매에 나왔기에 지난해 8월 서울 프리뷰에서도 선보인 조선시대 ‘백자청화송하인물위기문호’는 낮은 추정가의 약 3배인 9억원(75만 달러)에 팔렸다.
이학준 크리스티 코리아 대표는 “해외 소장가들이 보유한 한국 고미술품들이 다시금 세상에 나와 주목을 받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어 보람이 크다”면서 “한국 고미술품에 대한 국내외 지속적인 관심에 힘입어 서울 프리뷰를 진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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