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판 지식재산 뉴딜의 새로운 판을 짜겠습니다.”
삼성반도체 신화를 이끈 일등 공신이자 연구원으로 입사해 삼성전자 회장 자리까지 오른 권오현(사진) 삼성전자 상임고문이 25일 한국발명진흥회 제19대 회장으로 선임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이후 전 세계가 새로운 미래 혁신 전략을 찾고 있는 가운데 반도체 신화를 이끈 권 신임 회장의 통찰력과 경험이 한국의 미래 지식재산 생태계 발전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크다.
우리나라 최초 지식재산 전문 기관인 발명진흥회를 대표하게 된 권 회장은 이날 취임 화두로 ‘한국판 지식재산 뉴딜’을 통한 지식재산 산업 발전을 내세웠다. 권 회장은 서울 역삼동 한국지식재산센터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한국판 지식재산 뉴딜의 새로운 판을 짜보려고 한다”면서 "‘디지털 혁신, 데이터 중심, 더불어 함께’라는 세 가지 키워드를 하나씩 도전하겠다"고 말했다.
디지털 혁신에 대해서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모든 업종에서 일어나고 있는 디지털 플랫폼 경쟁 속에서 발명진흥회가 이끌어야 할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권 회장은 "발명진흥회는 국민을 대상으로 한 기관으로 지식재산 인재를 양성하고 평가·거래·금융 등 지식재산 사업화를 담당하고 있다"며 "발명진흥회가 지식재산 업계 선두에서 디지털 혁신을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권 회장이 이날 취임식에서 내세운 두 번째 키워드 ‘데이터 중심’은 빅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권 회장은 "발명진흥회는 발명품 유래, 발명가 노력, 지식재산 거래, 금융 등 수많은 지식재산 빅데이터를 가공하고 스토리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는 특허청을 중심으로 정부가 추진하는 디지털 지식재산 정책과 맥을 같이한다. 정부는 특허 빅데이터를 활용해 신산업을 먼저 찾아 민간에 연구개발 이정표를 제시하는 지원 정책을 추진 중이다. 또 디지털 시대에 맞춰 홀로그램 상표, 화상 디자인 등 새로운 유형의 지식재산에 대한 보호와 활용을 추진한다. 이를 위해 권 회장은 중소벤처기업부·교육부·특허청·지방자치단체들과 하고 있는 지식재산 생애 주기별 종합 서비스를 확대하겠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지식재산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도를 높여 정부의 정책 실효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경제계와 발명 특허 분야 안팎에서는 권 회장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민간에서는 삼성전자에서의 경험을 발명 특허 업계에 전달하는 가교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 한 발명 업계 관계자는 “샐러리맨으로 삼성전자의 최고 자리에까지 오른 삶만으로도 발명인에게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다”며 “특히 발명 꿈나무인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 일선에서 발명진흥회와 다양한 교류를 원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용래 특허청장은 “권 회장이 취임사에서 밝힌 지식재산 뉴딜은 우리가 반드시 가야할 방향”이라며 “발명을 비롯해 지식재산 정책과 생태계를 함께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기대감이 높다”고 말했다.
권 회장은 한국 반도체 산업을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인물 중 하나다. 삼성전자는 이병철 창업주가 지난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을 선언한 뒤 9년 만인 1992년 세계 첫 64메가 D램 개발을 계기로 세계 1위에 올랐다. 이후 삼성전자는 메모리반도체 세계 1위를 지키고 있다. 1992년 당시 권 고문은 D램 개발팀장을 맡았다. 권 회장은 '넘볼 수 없는 차이'를 강조한 ‘초격차’의 저자로도 일반에 친숙하다. 2018년 출간된 이 책은 권 회장이 33년간 삼성에서 일한 경험이 담겼다. 최근에도 삼성전자의 독보적인 지위를 표현할 때 자주 쓰인다.
권 회장은 이날 한국지식재산센터에서 열린 발명진흥회 이사회에서 이사진 만장일치로 제19대 발명진흥회장에 올랐다. 1973년 설립된 발명진흥회는 발명진흥법에 따라 발명 진흥 사업과 지식재산 산업을 보호하고 육성하는 게 목표인 특허청 산하 공공 기관이다. 고(故) 구자경 LG 명예회장,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구자열 LS그룹 회장 등 우리나라 대표 경제인들이 회장직을 지냈다.
권 회장은 임기 3년 동안 무보수로 회장직을 수행한다. 발명진흥회의 한 관계자는 "반도체 개발뿐 아니라 엔지니어로서도 뛰어나고 지식재산 정책에 대해서도 해박하다는 평가를 받아왔다"며 "각계각층에서 권 회장을 차기 회장으로 추천했다"고 말했다. 권 회장의 첫 공식 행보는 구자열 전 회장의 명예회장 추대식에 참석하는 일정으로 알려졌다. 권 회장은 발명의 날, 대한민국학생발명전시회, 대한민국지식재산대전과 같은 발명 행사마다 참석해 현장의 어려움을 듣고 발명인을 격려하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최근 발명진흥회 임직원들을 만나 "봉사하는 자세로 대기업의 경험을 전달하겠다"고도 말했다.
/양종곤 기자 ggm11@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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