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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조 달하는 '이건희 컬렉션'...삼성 '리움'으로 가나

삼성가 내달 상속세 신고 앞두고

故 이건희 수집 예술품 향방 관심

전문가들 "삼성, 작품 판적 없어

유족도 매각하기보다 기증에 염두"

서울 용산구 한남동 소재 삼성미술관 리움 전경. 리움은 이건희 전 회장 수집품을 비롯한 소장품을 기획전과 상설전을 통해 공개해 왔다. /사진제공=삼성문화재단 리움




지난해 10월 25일 타계한 이건희(1942~2020) 전 삼성 회장이 ‘국보 100점 수집 프로젝트’와 함께 ‘최고’를 추구하며 모은 미술품들의 향방을 두고 세간의 관심이 뜨겁다. 14일 미술계에 따르면 유족인 삼성가의 법률대리인 의뢰로 1만3,000여 점에 달하는 전체 작품을 감정한 한국미술품감정센터는 지난 주에 감정서를 제출했고, 각각 6,500여 점씩 감정한 화랑협회 미술품감정위원회와 한국미술시가감정협회가 이번 주까지 감정보고서를 취합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기관의 관계자 의견을 종합하면 전체 감정가는 3조 원 안팎으로 추산된다. 삼성가는 이들 보고서를 전달받아 약 1개월의 추가 준비기간을 거쳐 다음 달 말까지 상속세 자진 신고를 하게 된다.




1만3,000여 미술품 대략 3조원 추산




앤디 워홀의 '45개의 금빛 마릴린' /사진출처=리움 홈페이지


검증된 미술품은 희소성과 높은 수요 때문에 꾸준히 가격이 오르기에 금(金)같은 대체투자형 ‘안전자산’으로 분류된다. 아트바젤과 스위스 금융기업 UBS가 매년 발간하는 ‘미술시장 보고서’ 등에 따르면 자산가 중 베이비부머 이전 세대의 들은 자산 포트폴리오의 15%를 미술품으로 운용하며, X세대와 MZ세대 등 젊은 세대로 갈수록 예술품과 디자인의 비중이 더 커지는 추세라고 한다.

지난 12일 종가 기준으로 고(故) 이 회장의 보유 주식 가치 24조5,910억 원이다. 국보 30점과 보물 82점을 비롯해 서양 근현대미술품 1,300여 점을 포함한 미술품 1만3,000여 점의 가치를 3조 원으로 평가하고 여기에다 부동산과 현금자산 등을 포함하면 ‘이건희 자산 포트폴리오’는 예술품 비중을 10~15% 정도 두는 세계적 슈퍼리치의 표준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의 예술품 수집은 슈퍼리치의 자산관리와는 사뭇 다르다. 투자는 매각을 통해 시세차익을 실현하는 것인데 삼성가는 지금껏 단 한 점도 팔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이자 미술관정책 전문가인 A씨는 “간송이 일제강점기에 문화재와 미술품을 지켰다면 호암 이병철은 개발도상국 시절 유물의 해외반출을 막았고, 이건희는 문화재 환수와 세계적 미술품을 한국에 들여온 공로가 크다”고 평가했다. 서양현대미술품을 거래하며 삼성가의 컬렉션에도 관여한 바 있는 화랑 대표 B씨는 “1990년대에 수십 억원 대 미술품을 구입하는 것이 쉬운 결정이 아니었지만 이건희 회장의 선구안이 탁월했다”면서 “특히 전후 서양현대미술의 경우 구입 당시와 비교했을 때 30~50배 이상 값이 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크 로스코와 앤디 워홀, 르네 마그리트 등 전후 현대미술가들의 고가 작품까지 아우르며 최고의 작품 만을 수집할 때는 합리적인 셈법보다 최고의 미술관을 만들고 문화자산을 확보하려는 열정과 사명감이 더 컸을 것”이라고 말했다.




매각할 수 있으나 팔지 않을 듯




프랜시스 베이컨의 '방 안에 있는 인물' /사진출처=리움 홈페이지


삼성가의 미술품 수집과정을 지켜봤고 이건희 회장 컬렉션의 감정에도 관여한 미술계 인사 C씨는 “삼성은 팔기 위해 미술품을 수집한 적이 없고 유족도 상속 작품을 매각하기 보다는 기증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문화재·미술품 물납제’ 도입을 전제로 한 세제 혜택을 주장하는 미술계에서는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별도 미술관 마련을 주장하기도 하지만 절박한 명분과는 별개로 성사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다. 우선 관련 법안이 마련되지 않았고, 적용될 수 있는 특별법을 제정한다 하더라도 여론을 통한 국민 반감을 무시할 수 없다.

미술품을 국가가 기증받는다 해도 미술관 건립과 운영은 쉽지 않다. 그림으로 상속세를 물납 받아 건립된 대표 사례인 프랑스 파리 ‘피카소미술관’은 1973년 사망한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으로 국립미술관을 만드는 데 12년이 걸렸다. 1968년 도입된 물납제를 기반으로 했다. 10명에 가까운 상속인들 간의 분쟁이 1979년에 끝나 1차 물납이 성사됐고 상속 작품의 분류, 부지 마련 등에도 시간이 걸려 1985년에야 개관했다.



미술계 일각에서는 호암미술관과 국내 최고의 미술관으로 꼽히는 리움을 보유한 삼성문화재단에 기증하는 것이 최선이라는 의견이 나온다. 상속받은 문화재·미술품을 ‘공익목적 출연재산의 과세가액 불산입’ 조항에 따라 문화재단에 출연할 경우 해당 작품에 대한 상속세는 공제된다. 유산의 3분의 1을 받게 될 홍라희 전 삼성미술관 리움 관장이 이 회장의 와병 상황이던 2015, 2016년에도 세계적 미술전문지 아트뉴스에서 ‘세계 200대 컬렉터’에 선정돼 ‘이건희·홍라희 삼성 회장 부부’로 소개됐을 정도로 기여와 애착이 큰 만큼, 상속세 납부를 위한 매각보다는 수집의 본래 취지인 미술관에 두는 것을 원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술대학 교수 D씨는 “삼성 컬렉션은 처음부터 미술관 건립을 계획하고 미술사적 맥락에 맞춰 모은 것이기에 흩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며 “그간 작품 연구와 기획전, 출판물 발간 및 대외 홍보가 공립미술관 이상으로 우수했고 일반인과 연구자들이 접근하게 배려했다는 점에서 리움의 운영방식을 이어간다면 별도 미술관은 필요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미술에 있어서는 국가보다 삼성을 신뢰한다”는 말도 덧붙였다. 다만 세계에 단 7점 뿐인 로댕의 ‘지옥의 문’을 전시했던 중구 세종대로의 플라토미술관(구 로댕갤러리)이 삼성 사옥 이전과 함께 지난 2016년에 폐관했고, 리움 또한 현재 기획전 없이 ‘개점휴업’ 상태인 것은 안타까운 대목이다. 화랑 대표 E씨는 “미술품 수집을 의도와 달리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이 미술관 운영까지 위축시키는 게 큰 위협 요인”이라고 말했다.




공립박물관·미술관도 탐낼 컬렉션




보물 제926호로 지정된 14세기 고려 불화인 '수월관음보살도'는 대표적인 이건희 회장 소장품이다. /사진출처=문화재청


물론 공립기관이 탐낼 작품들은 수두룩하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국립중앙박물관과 국립현대미술관 등 정부 기관의 연간 소장품 구입예산은 다 합쳐도 200억 원이 되지 않는다. 국립박물관에 근무했던 한 문화재 관계자 F씨는 “삼성가에서 1980년대부터 적극 수집한 고려불화는 지금 100억 원을 줘도 못 구할 정도”라며 국보 ‘아미타여래 삼존도’나 보물로 지정된 고려시대 ‘수월관음도’는 국립중앙박물관도 확보하지 못한 귀한 유물이고, 국보로 지정된 고려시대의 ‘금동 대탑’, 쌍이 갖춰진 통일신라 시대의 금동 촛대, 통일신라의 청동 나전 거울 등은 국립박물관 소장품의 ‘빈 곳’을 메워줄 수 있는 유물이지만 주요 유물이 빠진 리움 컬렉션이 ‘빠진 이빨’이 되는 것 또한 문화적 손실일 것”이라고 말했다. 미술평론가 G씨는 “모네의 ‘수련’이나 자코메티의 조각이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된다면 눈길을 끌 수는 있겠으나 미술사적 맥락없이 튀기만 할 뿐 조화롭지 못하기에 기증을 받는다고 해도 미술관의 격을 올리는데 기여할 것이라 보기 어렵고 소장비용, 관련 인력 확보 등이 추가로 필요하다”면서 “서양미술품보다는 오랜 기간 수집한 2,200점의 한국 근대미술품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에 어울릴 것이 더 많다”고 말했다.

소장가의 철학이 담긴 ‘컬렉션’은 흩어지지 않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미술정책 연구자 H씨는 “컬렉션은 국내에 있는 한 국민이 누릴 수 있기에 국민의 것이 되고, 컬렉터는 선량한 관리자일 뿐”이라며 “서양이 지난 200여 년간 체득한 이 진리를 우리는 이제야 경험하는 중”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계적 명성의 사립미술관으로서 리움을 ‘한국의 게티뮤지엄'이나 '한국의 구겐하임’으로 키우는 게 낫고, 적극적인 조사·연구와 전시를 기반으로 지역 순회전 등 국민들의 문화복지향상에 기여해줄 것을 기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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