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노련한 정치인의 모습이 많이 보입니다.”
서울시의 한 간부에게 오세훈 서울시장의 최근 활동에 대해 묻자 돌아온 답이다. 오 시장은 임기 첫날인 지난 8일부터 현장·시의회·정부·소속 정당을 넘나드는 폭넓은 행보를 보였다. 그는 정부의 가장 아픈 부분이자 여론에 미치는 폭발력이 큰 부동산·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방역 정책의 문제를 정확하게 짚어 주목을 받았다. ‘첫날부터 능숙하게’라는 그의 선거 슬로건처럼 준비된 모습이 돋보였다.
오 시장은 정부의 방역 정책을 자영업자·소상공인의 희생을 강요하는 일률적인 ‘규제 방역’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민생과 방역을 모두 지키는 ‘상생 방역’으로 패러다임을 바꿔 나가겠다”며 ‘서울형 거리 두기 매뉴얼’이라는 독자적인 방안을 내세웠다. 그러면서도 정부와 협의를 거쳐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런데 이 말은 모순이다. 깐깐한 방역 원칙을 고수했던 정부가 코로나19 확진자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오 시장의 대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쉽게 예상된다. 결국 지금까지 오 시장이 보여준 광폭 행보는 정치적으로 주목받기 위한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설득력을 얻는다.
이미 선거 전부터 서울시 안팎에서는 다음 지방선거가 예정된 내년 6월까지 1년 2개월에 불과한 임기, 여당이 절대 다수인 시의회·자치구의 구도 때문에 오 시장이 당선되더라도 뚜렷한 성과를 내기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면 예상대로 흘러가는 것 같다. 부동산·코로나19 정책은 현재 상황에서 서울시장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기보다는 대중의 주목을 끌기에 좋은 사안이다.
서울시장은 서울시의 문제를 해결할 유능한 행정가의 자리지만 더 큰 도전을 준비하는 노련한 정치인이 거쳐가는 자리이기도 하다. 유능한 행정가와 노련한 정치인의 역할을 모두 제대로 해내기는 어렵다. 더 큰 도전을 위해서는 주목을 받아야 하는데 서울시민에게 필요한 문제 해결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서울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일단 서울시장이 노련한 정치인보다는 유능한 행정가이기를 바란다. 그래야 정치인 오세훈의 미래도 있다.
/박경훈 기자 socoo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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