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정규 투어 데뷔 10년째를 맞은 곽보미(29)는 우승 경험이 한 번도 없는데도 여러 번 우승해본 선수처럼 경기 했다. 대상(MVP) 3연패를 자랑하는 최혜진, 국가대표 출신 지한솔과 부담스러울 만한 챔피언 조 대결에서 1타 차의 불안한 리드를 1타 차 우승으로 완성했다. 상금은 1억 800만 원.
‘턱걸이 생존자’ 곽보미가 데뷔 10년 차에 우승컵을 들었다. 우리 나이 서른에 찾아온 정규 투어 첫 우승이다. 곽보미는 9일 경기 안산 대부도의 아일랜드CC(파72)에서 열린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교촌 허니 레이디스 오픈(총 상금 6억 원) 3라운드에서 보기 없이 버디만 3개를 잡아 3타를 줄였다.
공동 2위 최혜진, 지한솔에 1타 앞선 단독 선두로 출발했던 곽보미는 최종 합계 9언더파 207타를 기록, 3년 6개월 만의 통산 2승을 노렸던 2위 지한솔을 1타 차로 제쳤다. 지난 시즌 최종전 우승자 최혜진은 1타를 잃어 4언더파 공동 7위로 밀렸다.
곽보미는 지난 시즌 상금 순위 60위 선수다. 시드(출전권) 유지 커트 라인에 딱 걸려 서바이벌 게임인 시드전에 끌려가지 않고 올 시즌 출전권을 유지했다. 올 시즌도 앞선 3개 대회에서 모두 컷 탈락하고 한 번도 60대 타수를 적지 못할 정도로 고전의 연속이었는데 네 번째 대회에서 꿈에 그리던 우승을 만났다. 1라운드에 2타 차 공동 2위에 오르고 2라운드에 선두로 나선 뒤 3라운드에 트로피를 움켜쥐었다. 사흘 내내 언더파 스코어를 놓치지 않은 끝에 정규 투어 86번째 출전 대회에서 동료들로부터 꽃잎 축하세례를 받았다.
곽보미는 정규 투어만큼 2부 투어가 익숙한 선수다. 2부 투어에서는 우승도 세 번 있다. 정규 투어 경험은 이번이 다섯 시즌째로, 2019년 7월 문영 퀸즈파크 챔피언십 준우승이 최고 성적이었다. 당시 마지막 날 무려 9타를 줄인 김아림에게 발목이 잡혔다.
오래 묵은 첫 우승에는 행운도 따랐다. 1타 차의 살얼음 리드 속에 맞은 마지막 18번 홀(파5). 곽보미의 티샷이 왼쪽으로 치우쳤다. 잘못하면 대세가 기울 수도 있던 상황. 하지만 카트 도로를 맞은 볼은 밖으로 나가지 않고 계속 도로를 타고 앞으로 굴렀다. 결국 볼은 굴러간 거리까지 293야드나 나간 뒤 배수구에서 멈췄다. 무벌타 드롭 뒤에 친 두 번째 샷도 좋지 않았지만 곽보미는 디봇(잔디 팬 자국)에서 친 세 번째 샷을 그린에 잘 올려 2퍼트 파로 우승을 확정했다.
앞서 2번 홀에서 바로 지한솔에게 공동 선두를 내줬던 곽보미는 4번 홀(파5) 버디로 다시 달아났다. 14번 홀(파4) 8m 버디로 지한솔이 다시 1타 차로 압박해왔지만 곽보미는 17번 홀(파4) 벙커 샷을 핀 1m 안쪽에 붙여 파를 지키는 등 끝내 연장을 허락하지 않았다.
우승 뒤 검은 마스크 위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곽보미는 “상금 순위 60위에 걸리자 주변에서 이왕 시드권이 유지됐으니 올해만 해보자고 지지해줬다. 이번 시즌 세 대회 연속 컷 탈락에 정말 올해만 해보고 그만두자는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예상치 못한 우승이 찾아왔다”며 감격해 했다. “시드 걱정 안 하게 돼 정말 좋다”는 그는 “온갖 짜증에도 항상 곁에 있어준 엄마가 누구보다 고맙다”며 다시 눈물을 쏟았다.
임희정이 네 홀 연속 버디 등으로 6타를 줄여 전우리와 함께 6언더파 공동 3위를 했다. 상금·대상(MVP) 포인트 1위 박현경은 3언더파 공동 10위, 시즌 첫 출전인 ‘퍼트 달인’ 이승현은 6오버파 공동 58위로 마감했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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