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아트페어의 VIP 프리뷰가 열린 지난 14일 오전 11시. 일반 관람객들에게 오픈하기도 전이었지만 이미 유명 작가들의 작품들에는 ‘주인이 있다’는 빨간 딱지가 붙어 있었다. 500만 원 이하 젊은 신진 작가들의 작품은 어김없이 누군가의 품에 안긴 상태였고 그 주인은 놀랍게도 MZ세대인 것으로 전해졌다. 현대 사회와 정치 이슈를 마치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일기같이 표현해낸 작품으로 잘 알려진 현대 미술 작가 마이클 스코긴스가 거대한 종이 위에 끄적인 낙서를 액자에 담은 작품은 최근 들어 미술 애호가로 둔갑한 젊은 층의 핸드폰에 연이어 담겼다. 이날 동반한 지인은 “지난달 ‘장 필립 델롬’ 개인전이 시작된 당일에 작품을 사러 갔더니 오전에 20~30대 친구들이 전시 시작도 전에 알고 미리 ‘찜’해 구매해 갔다는 것을 듣고 깜짝 놀랐다”며 “기성세대는 이제 정보력과 행동력을 가진 MZ세대와 경쟁해야 한다”고 혀를 내둘렀다. 부산아트페어 운영위 관계자는 “특히 올 들어 그림 시장에 유입되는 젊은 고객이 많아졌다”며 “MZ세대 사이에 트렌드를 형성하는 작가의 작품 격이 상승 곡선을 그리고 있을 정도로 MZ세대는 아트 시장에서 위협적인 큰손”이라고 전했다.
트렌드에 민감하고 유행에 함께 참여하며 소속감을 느끼는 ‘롤코족’인 MZ세대가 이처럼 아트에 꽂히면서 최근 아트적 요소가 강한 공간들이 봇물처럼 나오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돋보이는 곳은 다름 아닌 오프라인 플랫폼. 특히 펜데믹(세계적 대유행)에 따른 사회적 거리 두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던 백화점이다. 아트를 입히지 않으면 공간이 생존할 수 없는 시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릴 인증 샷을 건질 수 없는 공간은 MZ세대의 외면을 받게 되는 시대가 되면서 백화점들은 경쟁적으로 아트를 접목한 공간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실제로 백화점이 쇼핑·먹거리·체험 등을 모두 갖춘 거대한 쇼핑 복합 갤러리로 거듭나면서 디지털 보더리스 쇼핑족인 MZ세대가 다시 돌아오고 젊은 기운으로 백화점이 활기를 찾는 모습이다. 이미 20~30대 고객 비중이 63%에 달하는 ‘앤디 워홀 전’이 열리는 더현대서울에 젊은 층이 줄을 잇고 있으며, 롯데백화점도 지난달 지하 1층에서 물건을 파는 대신 상품을 모두 걷어내고 플라워 작가와 함께 판타지스러운 공간을 연출해 MZ세대에 인증샷을 선물했다.
이커머스에 젊은 고객을 빼앗겨 고전했던 오프라인 플랫폼들은 최근 공간의 진화를 통해 MZ세대의 발길을 다시 모으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안주할 것이 아니라 다음 스텝을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이커머스와의 전쟁에서 지속적인 승기를 잡고 시장을 리드해갈 수 있다. MZ세대가 롤러코스터를 타듯 종잡을 수 없이 빠르게 유행을 즐기는 롤코족이라는 사실에 항상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어야 한다. 광풍처럼 불고 있는 아트에 대한 관심이 어느 곳으로 갈지 미리 시장 조사를 하고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중고 거래, 스니커테크, 샤테크, 아트 소비로 이어지고 있는 트렌드를 주도적으로 MZ세대가 이끌면서 관련 산업이 성장했지만 만약 MZ세대가 등을 돌린다면 이들 모두 곧바로 시들 수 있다.
아트 컬래버레이션 공간처럼 단순한 변화를 통해서는 언제든 새로운 것으로 우르르 갈아타려는 MZ세대의 마음을 얻기는 어려울 것이다. 패러다임의 변화 속에서 일희일비하는 환심 전략과 반짝 트렌드가 아니라 백화점만이 줄 수 있는 지속 가능한 가치를 주는 유통 공간으로의 거듭남을 고민해야 한다. /심희정 라이프스타일 전문기자 yvett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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