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은 늘 요란하다. 발소리, 차 소리, 사람 소리, 기계 소리…. 서울의 도심 중에서도 광화문 앞은 유독 부름이 잦고 외침이 과하다. 게다가 요즘은 광화문광장 조성 공사까지 겹쳐 더 어수선하다. 광화문에서 세종대로를 따라 종로 쪽으로 걷다 보면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7번 출구와 인접한 현대해상화재보험 본사 건물을 만나게 된다. 오가는 사람도 많은 이곳 1층은 전면이 통유리로 돼 있어 밖에서도 로비에 걸린 그림이 보인다. 허연 바탕에 힘찬 검은 선을 드문드문, 반복적으로 그은 작품이다. 싱겁다 여겨질지 모를 그림이건만 희한하게도 스치듯 본 그 작품의 잔상을 기억하는 이들이 제법 있다. 뜨거운 도심에서 청량감을, 치열한 일상에서 여유를 권하는 원로 화가 오수환의 2004년 작 ‘적막’이다.
‘동양적 서양화를 그리는 작가’로 통하는 오수환의 선들은 서예의 일필휘지처럼 곧고 힘차게 그었으되 그 안에 미묘한 떨림의 기운이 담겨 있다.
“‘적막’ 연작에서의 선은 서예적 요소라기보다는 단순화해 보여지는 ‘긴장된 선’입니다. 힘 있는 붓질로 선의 긴장감을 표현했지만 전체적으로는 정적(靜的)이게, 속도감 있는 선으로 고요함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스키 점프 선수가 힘껏 날아오르는 순간 모든 근육이 팽팽해지는 극한의 긴장과 한계에 도전하는 속도감이 온몸을 휘감고 있음에도 겉으로는 쭉 뻗은 직선이 멈춰 있는 양 보이는 것과 같은 이치다. 자로 잰 듯, 가위로 자른 듯 일사불란한 직선을 도시인의 삶에 비유한다면 호흡이 담긴 오수환의 선들은 인간성이 되살아날 수 있는 이상향의 삶을 꿈꾸게 한다. 폭 440㎝, 높이 260㎝의 작품은 3개의 캔버스로 나뉘어 제작됐다. 각자의 공간을 보장 받고자 가로로 누운 선들이 있는가 하면, 도약하며 날아오른 일군의 선들은 검은 방울을 흩뿌리며 초월과 해탈의 순간을 보여준다. 유독 오른쪽 끄트머리에는 선들이 밀집해 있다. 머리를 맞대고 수군거리려던 것일까, 말을 삼키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려던 찰나인가.
그림의 주인공은 선이지만 붓질 거듭한 자국이 역력한 밑칠이 여운의 근원이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로 왕조가 바뀔 무렵 장식적이고 귀족적인 청자가 소박하고 실용적인 백자로 전환되던 시기의 도자기인 ‘분청사기’ 표면이 그랬다. 짙은 색 바탕흙 표면 위에 백토를 덧씌웠던 것인데, 이 그림의 바탕에서 그 툭툭한 맛이 느껴진다.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우리 전통에 대한 관심이 컸고 조선 도자기, 특히 분청사기가 갖는 독특한 한국적 미감의 구조를 생각했다”는 오 작가는 “선 하나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모든 것은 하나로 돌아온다는 단순함으로 명상적 표현을 해보자는 생각으로 여운이 담긴 단순하고 고요한 세계를 그리고자 한 것이 ‘적막’ 연작”이라고 말했다. ‘적막’은 국립현대미술관도 비슷한 크기인 2002년 작을 소장하고 있는 등 작가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지난 1997년 당시 일본 최대의 현대미술 전문 화랑이던 아키라이케다갤러리에서 ‘적막’을 주제로 오수환의 개인전이 열렸고 2002년에는 세계 5대 사립 미술 재단 중 하나인 매그파운데이션이 설립한 스페인 매그갤러리에서도 ‘적막’ 시리즈가 선을 보였다.
화가의 선(線)은 인생의 산물이다. 오수환은 유교적 성향이 강한 경남 진주의 한학자 겸 서예가 청남(菁南) 오제봉(1908~1991)의 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서책과 붓을 가까이했다. 그림을 업으로 삼을 생각을 한 적은 없었으나 서예에 매진한 부친의 영향이 그를 자연스럽게 예술가의 길로 이끌었다. 서울대 미술대학 회화과 4학년 때 입대해 이등병 신분으로 베트남전쟁에 참전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 더 멀리까지 사유하지 않으면 뭔가를 얻어낼 수 없다, 인간은 결국 시간을 전제로 죽음을 향해 다가가는 존재이니 그 본질의 극단까지 가봐야 한다”는 깨달음을 얻었으니 전쟁을 교집합으로 알베르토 자코메티, 파블로 피카소, 페르낭 레제 같은 전후 현대미술의 거장들과 공감하는 계기가 됐다. 일상으로 돌아왔으나 극심한 좌우 대립의 폐해를 목도한 그는 ‘현실과 발언’ 같은 민중미술 그룹의 일원으로 참여해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구상미술을 보여주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부자유에 대한 회의가 들어 추상으로 돌아섰고 평생을 추상으로 내달렸다. 이 모든 경험이 격정적 붓질의 동력이 됐다. 1980~1990년대에는 도교적 사상에 근간을 둔 ‘곡신(谷神)’ 연작을 선보이며 만물이 생동하는 생명력의 근원을 펼쳐냈다. 이후 선보인 ‘적막’ 시리즈는 단순함 속에 동적이면서도 정적인 역설의 상태를 내포했으니, 상대적으로 불교적 깨달음에 가깝다. 추상표현주의로 분류할 수 있는 그의 작품은 동양적 정신성이 담겼다는 이유로 해외에서 더 호평 받고 있다.
지금은 현대해상 본사인 이 건물은 1976년 16층으로 지어져 1983년까지 현대그룹 본사로 유명했다. 현대해상은 1999년 1월 현대그룹에서 계열 분리한 후 현대건설로부터 이 건물을 인수해 리모델링 공사를 진행했다. 2004년 3월 준공식 때 로비에 걸린 오수환의 ‘적막’은 숱한 사람이 나드는 이 자리를 꿋꿋하게 지키고 있다. 정문 앞 엘리베이터 통로 좌측에 놓인 정주영(1915~2001) 현대 창업주의 흉상을 제외하면 로비 전체에 예술 작품이라고는 ‘적막’ 한 점뿐이다. 자칫 어수선할 수 있는 이곳에서 작품 한 점이 구심점이 될 수 있기에 탁월한 배치다. 옆 사람의 말소리, 내 숨소리조차 놓치기 십상인 분주한 도심의 광화문 한복판, 소요(騷擾)에서 고요를 추구하는 ‘적막’은 역설적 작품이기에 더욱 빛나는 로비의 그림이다.
/글·사진=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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