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뜬장에는 겁에 질린 개들이 가득했다. 오랫동안 길에서 생활을 한 개들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찬 목줄로 누군가의 반려견이었음을 알 수 있는 개들도 적지 않았다. 출신과 상관 없이 뜬장의 개들은 똑같은 음식물 쓰레기를 받아 먹으며 목숨을 연명했다. 고요한 새벽 세시가 고비였다. 전기봉을 든 사람들이 개들을 죽이러 왔다. 비참하게 울부짖으며 죽어가는 다른 개들을 보고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 일어서지조차 못하는 개들도 있었다. 피부병, 눈병은 흔했다.
동물해방물결과 동물을 위한 마지막 희망(LCA)은 최근 8개월 간의 ‘개고기 산업’ 잠입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두 단체는 ‘한국 개고기의 메카'라고 불리는 성남 모란시장의 대형 건강원 2곳과 도살장, 경매장, 농장까지 총 6개 업장을 추적·감시했다.
2020년 10월부터 2021년 5월까지의 조사에 따르면 성남 모란시장에서는 여전히 시장으로 산 개들이 실려오고 팔려나갔다. 이들은 도살장으로 실려 가기 전까지 숨겨진 채 트럭에 실려있었다. 도살된 개들은 사체 그대로 모란시장의 가게에 넘겨졌다. 지난 2018년 성남시 차원에서 공개적으로 개를 전시, 도살하는 시설을 없애기로 했지만 과거의 풍경이 아직도 살아있는 셈이다.
새벽 세 시, 10~30마리의 개들이 죽어나갔다
조사 대상이었던 모란시장의 T 건강원, H 건강원은 아예 직접 도살장을 운영 중이었다. 두 도살장은 모두 경기도 여주시에 서로 인접해있으며, 도살은 인적이 드문 새벽 3시경 이뤄졌다. 약 두 달간 집중적으로 감찰한 바에 따르면 두 도살장은 한 번에 평균 10~30의 개들을 도살하며, T 건강원은 주 3~4회, H 건강원은 매일 도살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조사 결과 개들은 모두 현행 동물보호법 제8조1항의 1호(잔인한 방법으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와 2호(같은 종류의 다른 동물이 보는 앞에서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를 위반하는 잔혹한 방식으로 도살됐다. 개들은 전기봉이 몸에 닿을 때마다 고통스럽게 울부짖고 몸부림쳤다. 서울고등법원은 지난 2020년 개를 전기봉으로 감전시켜 죽인 사건에 대해 동물보호법 제8조1항1호를 위반하는 ‘동물 학대'라는 전향적인 판결을 내린 바 있다.
두 도살장의 개들은 도살되기 직전까지 뜬장에 갇혀 음식물 쓰레기를 먹고 운송용 철망에 가득 욱여넣어진 채 방치됐다. 심각한 눈병과 피부병을 앓는 개, 극도의 불안과 공포로 일어서지조차 못하는 개도 있었다.
반려견 끌고 와 팔아넘기는 ‘반려인’도
도살된 개들 중 일부는 목줄을 차고 있었다. 누군가의 반려견이었지만 유기되거나 매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조사 기간 동안 모란시장 건강원으로 직접 반려견을 끌고 와 팔아넘기는 이도 있었다.
T 건강원은 경기도 여주의 ‘식용 개 경매장'에서 개들을 공급받았다. 식용 개 경매장은 전국 곳곳의 가정집, 공장, 상가 등에서 개들을 ‘쓸어담기’ 방식으로 훔치거나 헐값에 사들여 경매에 부치는 불법 유통경로다. H건강원은 충청북도 음성에 위치한 대형(약 2000마리 이상 규모) 개농장에서 개들을 주로 공급받는 것으로 조사됐다.
동물해방물결 이지연 대표는 "전국적으로 벌어지는 동물 학대를 어떻게 근절할지, 정부와 국회는 개 도살 금지법 제정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동물해방물결은 이날 여주시 지역 경찰과 함께 조사 대상지였던 두 곳 도살장을 급습하고, 동물보호법 위반 사실에 대한 고발장을 수원지방검찰청에 제출했다.
동물해방물결 법률 자문위원인 김도희 변호사는 “그동안 개 도살 금지를 위해 여러 법이 고안됐지만, 현재 발의된 동물보호법 개정안은 가장 확실하게 도살·식용·판매를 금지하고 있다"며 “해당 법안만 통과되면 국내 개 도살을 전면 금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물해방물결의 이번 조사 과정을 다룬 캠페인 영상(링크)에는 배우 임세미 씨(내레이터)와 반려견 흑미(출연)가 참여했다. 영어판 영상에선 미국의 배우 킴 베이싱어가 내레이션을 맡았다. 이번 조사에 관한 자료는 동물해방물결 홈페이지와 공식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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