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차’로 불리는 대형 세단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중후한 맛이 있지만 의전용 차량이라는 느낌이 강해 젊은 감각을 뽐내고 싶은 운전자들은 다가가기 쉽지 않다. 국내 모델 중에서는 과거에 현대차(005380) 에쿠스와 쌍용차(003620) 체어맨이, 최근에는 제네시스 G90과 기아(000270) K9이 회장님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동시에 다른 이들에게는 “저 가격이면 차라리 수입차를 사지”라는 조롱을 들었다. 이는 플래그십 모델로서 국내 브랜드 대형 세단들이 갖는 한계일지도 모른다.
기아가 새로 내놓은 페이스 리프트 모델 ‘더 뉴 K9’은 이러한 단점을 극복하기 위한 하나의 시도라고 봐야 한다. 고급스럽지만 웅장함보다는 모던한 느낌을 강조해 젊은 감각을 가진 운전자들의 선택을 받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보인다. 디자인부터 살펴보면 전면부는 중후하면서도 날렵한 인상을 강조했다. 그릴을 키워 멀리서 봐도 플래그십 고급 세단이라는 점을 알 수 있지만 헤드램프는 상대적으로 날카롭게 디자인해 스포티한 느낌이 들었다. 부분변경한 K9이 과거보다 세련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측면은 균형 잡힌 실루엣과 볼륨감 있는 라인으로 입체감을 살렸다. 다만 차량 후면부의 디자인은 호불호가 갈릴 수 있어 보인다. 리어 램프를 좌우 일자로 길게 이어진 모습으로 표현했는데 젊은 감각을 따른 것으로 트렌디하는 의견이 있는 반면 너무 과한 디자인이라 ‘생선 뼈 같다’는 비판도 나오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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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내 디자인도 플래그십 모델답게 고급스러움은 물론 미니멀을 바탕으로 한 실용적인 기능성을 갖췄다. 대형 센터 스크린과 터치패널, 다이얼 혹은 버튼식 기어 변속기가 요즘 차량의 대세이지만 K9에는 센터페시아에 아날로그 키가 많이 탑재됐으며 레버형 기어 변속기를 장착해 차량 기능을 직관적으로 쉽게 실행할 수 있다. 시트의 기능성도 흠잡을 데가 없다. 회장님 차라는 정체성에 맞게 특히 뒷좌석 시트가 널찍하고 평평해 편안하게 몸을 누일 수 있다. 옵션인 2열 터치스크린 듀얼모니터에 탑재된 내장 엔터테인먼트 중 골프 관련 콘텐츠가 따로 있다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시동을 걸고 주행을 시작하자 부드럽다는 느낌이 먼저 들었다. 서울에서 경기 포천시까지 90㎞ 가량을 운전했는데 대형 세단으로서 주는 안정감이 탁월했다. 코너를 돌 때나 오르막길을 오를 때도 편안하게 움직였다. 기아는 세계 최초로 도입한 전방 예측 변속 시스템(PGS)이 K9의 안정적 드라이빙의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레이더, 카메라, 내비게이션으로 차량 앞의 상황을 예측해 최적의 기어로 자동 전환된다. PGS는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과 함께 자율주행 기술을 실현하는 핵심 기술이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리자 외부 소음이 실내로 전달되지 않는 정숙성이 느껴졌다. 액셀을 세게 밟아 가속해도 엔진소음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뒷자석에 앉은 VIP가 실내에서 업무를 보거나 전화 통화를 해도 큰 무리가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행 퍼포먼스 측면에서도 만족스러웠다. 큰 차체가 가진 한계 탓에 스포츠 세단만큼의 운전하는 재미를 제공하지는 못하지만 플래그십 모델이 줄 수 있는 퍼포먼스는 충분히 갖췄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에 놓으면 먼저 운전자의 시트가 팽팽하게 몸을 감싼다. 액셀을 깊게 밟아 가속하자 육중한 차체가 속도계의 바늘의 움직임과 함께 거침없이 뻗어 나간다. 전장이 5,140㎜, 공차 중량이 2,000㎏에 이르는 대형차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부드러우면서도 기민하게 움직였다.
시승을 마치고 차에서 내릴 때 K9에 대한 선입견이 조금 사라졌다. 디자인 측면에서 젊어졌다는 느낌을 받았지만 운전 전만 해도 여전히 ‘회장님차’라는 거부감이 들었는데 직접 몰아보니 그런 생각이 일부분 해소된 것이다. 부분변경된 K9의 가격은 3.8 가솔린 플래티넘 5,694만 원, 마스터즈 7,137만 원이며, 3.3 터보 가솔린은 플래티넘 6,342만 원, 마스터즈 7,608만 원(개별소비세 3.5% 기준)이다. 준대형 세단인 제네시스 G80보다는 비싸지만 동급 대형세단인 G90보다는 낮아 합리적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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