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에서 일주일째 크고 작은 산불이 이어지는 가운데 수도 아테네 북쪽의 에비아 섬을 덮친 화마가 좀처럼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9일(현지시간) AFP·AP 통신 등에 따르면 아테네에서 북쪽으로 200㎞가량 떨어진 이 섬에는 현재 600여 명의 소방관과 소방 항공기·헬기 10여 대가 투입돼 화염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에비아 섬은 그리스에서 두번째로 큰 섬이자 20만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관광명소다. 이번 화재로 지금까지 서울 면적(약 605㎢)의 절반이 넘는 산림이 황폐화했고 가옥 수백 채가 불탄 것으로 당국은 추산하고 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상에는 에비아섬 주민들이 확산하는 산불을 피해 여객선을 타고 긴급 대피하는 등 참혹한 현장 영상이 공유되며 수천만건의 조회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 섬에선 검붉은 재가 하늘을 뒤덮고 굵은 연기 기둥이 여기저기서 솟구치는 등 재난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광경이 매일 펼쳐지고 있다. 지난 3일 첫 발화 이후 일주일간 관광객과 주민 수천 명이 배를 타고 섬을 빠져나갔지만 여전히 많은 주민은 자신의 삶의 터전을 지키고자 현장에 남았다.
잔류한 주민 일부는 화재 여파로 전기와 수도 공급마저 끊긴 최악의 환경에서 말 그대로 목숨을 걸고 화마와 싸우고 있다. 당국이 주민 추가 철수 등 만약의 사태에 대비해 에비아 섬에 보낸 페리선은 거처를 잃었거나 가재도구를 두고 급하게 피신한 주민의 임시숙소로 활용되고 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26세의 한 주민은 "우리는 신의 손에 맡겨졌다"며 "현재 남아있는 사람들마저 떠나면 마을은 모두 불에 타 사라질 것"이라고 호소했다. 구조선을 타고 섬을 탈출한 38세 임부는 로이터에 "마치 공포영화 같다"면서 "하지만 이는 영화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우리는 공포 속에 하루하루를 견뎠다"고 참혹한 상황을 전했다.
섭씨 45도를 넘나드는 폭염이 지속하는 가운데 장비·인력 부족으로 진화 작업이 더딘 데다가 새로운 불씨가 출현하는 곳도 있어 앞으로 피해는 더 커질 것으로 우려된다.
에비아 섬 외에 대규모 산불 피해를 본 아테네 북부와 펠레폰네소스 반도 지역은 진화 작업이 성과를 보이며 조금씩 상황이 호전되고 있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그리스 최대 섬인 크레타 섬에서 발화한 산불도 진정되는 추세다.
유럽산림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달 말 이후 그리스 곳곳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한 수백 건의 화재로 7일 현재까지 566㎢ 규모의 산림이 소실된 것으로 확인됐다. 3명이 사망하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하는 등 인명 피해도 크다.
이번 화재는 방화 또는 과실에 의한 실화(失火)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현지 경찰은 이미 여러 명을 방화 혐의로 체포한 상태다.
한편 키리아코스 미초타키스 총리는 이날 TV로 생중계된 대국민 담화에서 최근 며칠간 그리스 곳곳에서 586건의 산불이 발생했다면서 "우리는 전례 없는 규모의 자연재해에 직면했다"고 말했다. 이어 "수십 년 만에 맞닥뜨린 가장 어려운 시기"라면서 국민의 생명 보호에 우선순위를 두고 가용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진화 작업에 총력을 쏟겠다고 다짐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이 흐르면서 정부의 무능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커가는 상황을 의식한 듯 "여러 면에서 정부의 대응이 충분치 않았다"며 "정부의 실책에 사과한다"고 고개를 숙였다.
그리스 정부는 이번 화재로 가옥이 파손된 주민에게 최대 6,000유로(약 808만원), 부상한 주민에게는 최대 4,500 유로(약 606만원)의 보상금을 지급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또 가장 피해가 큰 에비아 섬과 아테네를 낀 아티카 지역에는 5억 유로(약 6,735억원) 규모의 지원 프로그램이 가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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