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랑을 처음 시작할 때 신진이던 작가들이 중진이 되어 한국 화단의 중추로 활동하니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함께 해 온 작가들이 한국현대미술사, 나아가 세계미술사를 장식하는 거장이 되도록 도와드리는 일이 20년을 맞은 이화익갤러리가 마주한 역사적 사명입니다.”
IMF외환위기의 충격이 채 가시지 않았던 지난 2001년 9월. 국립현대미술이 공식 채용한 제1기 전문직 큐레이터(6급 학예사)로 6년, 국내 최고의 명문 화랑인 갤러리현대에서 6년을 디렉터로 일했던 이화익(64·사진) 대표가 “내 이름으로 갤러리를 열겠다”고 하자 주변에서는 “지금은 화랑 쇠퇴기다” “망할 게 뻔하다”라는 만류의 목소리가 더 컸다. 확신이 있었기에 강행했다. 프랑스에서 주로 활동해 온 화가 차우희 개인전으로 첫 발을 뗀 이화익갤러리가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이화익 이화익갤러리 대표는 18일 서울 종로구 송현동 갤러리에서 개관 20주년 기념전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 20년을 되짚었다. 이 대표는 “우리 화가들이 전업작가로 살 수 있으려면 시장성이 필수이기에 해외시장 개척에 몰두했다”면서 “미술관 학예사 시절, 미국 클리블랜드미술관에서 연수할 때 현지 큐레이터들이 크리스티·소더비 등의 경매 도록을 통해 작가 정보를 얻는 것을 보고 글로벌 경매를 통해 저평가 우량주인 우리 작가를 알려야겠다고 마음 먹었다"고 말했다. 지난 2005년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 김덕용·김은현 작가를 처음 선보였고, 당시 구상미술이 강세인 점에 착안해 김동유·이정웅·최영걸·정보영 등 30대 작가를 적극 출품했다.
“작은 인물화를 반복적으로 그려 커다란 ‘이중 인물화’를 이루는 김동유가 주목도에 비해 판매가 활발하지 않던 때였어요. 2006년 크리스티 경매에 마릴린 먼로를 그린 100호 크기 작품을 내놓았는데, 1,200만원 시작가의 25배 이상인 2억7,500만원에 미국인 컬렉터 품에 안겼어요. 현장에서 유럽,미국 컬렉터들의 관심이 뜨거웠고 김동유 작가는 단숨에 ‘홍콩 스타’가 됐죠.”
작가 프로모션은 물론 작가 발굴은 갤러리의 가장 중요한 과업이다. 지난해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박수근미술상 수상자로 선정되는 등 제2의 전성기를 달리는 ‘자연주의 미술의 거장’ 임동식은 이 대표가 재발견 해 뚝심있게 후원한 작가 중 한 명이다.
“우리 전속작가의 전시가 있어 방문한 청주의 한 문 닫은 식당에서 행사 뒷풀이가 열렸는데 여기저기 걸린 그림이 예사롭지 않더군요. ‘식당에 있을 작품이 아니다’ 싶은 귀한 작품들이 눈에 보여서 모든 방마다 불을 다 켜서 보여달라고 했습니다. 거기서 발견한 작품을 좇아 촌부(村夫)처럼 지내던 임동식 선생을 끌어냈어요. 한국 작가를 더 발굴해야겠다는 갈증이 있던 시기에 만난 귀한 작가가 이제야 제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이화여대를 영문과를 졸업하고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을 전공한 이 대표는 미술관 큐레이터의 기획력과 사명감, 화랑 갤러리스트의 안목과 국제감각을 모두 습득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지난 2017~2019년에는 한국화랑협회 회장도 역임했다.
어떤 작품을 선호하느냐는 물음에 이 대표는 “장르 불문하고 자신만의 독특함이 있는 작가, 이 작가 아니면 안된다 싶은 작품에 끌린다”고 답했다. 그는 “오랫동안 그림을 많이 봐왔기에 생긴 변별력, 맛을 음미할 줄 아는 것처럼 좋은 작품을 좋다고 느낄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하다”면서 “인기 작가도 좋겠지만 그림 구입을 생각할 때는 미술사에 남을 작가들, 젊은 작가여도 미래가 촉망되고 전문가들이 주목하는 작가에게 관심가지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그간 이화익갤러리와 인연 맺은 작가 24명의 신작으로 꾸민 20주년 기념전은 1부가 오는 31일까지, 2부가 9월2~15일까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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