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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달력, 예술 품은 '명품'이 되다

■한국의 컬렉터들- 전후연 연미술 회장

김종근 미술평론가

달력 소재 그림으로 미전 수상 계기

고급 캘린더의 비전·상업성에 눈떠

삼성그룹 VIP용 달력 25년간 제작

첫 구입 작품은 이중섭 '은박지그림'

유명작가 화집·판화 만들며 수집도

컬렉션으로 미술관 세우는 게 꿈

전후연 연미술 회장




1988년 시인 조병화 선생은 전후연(사진) 연미술 회장에 대해 “사람이 세상에 아가로 태어나서 맨 처음 꿈을 꾸는 꿈의 세계에서 전후연은 그림을 그린다. 아가의 꿈속의 말을 사람들은 모른다. 아가의 꿈속의 노래를 사람들은 모른다. 전후연은 그것을 그림으로 통역을 한다. 들리지 않는 깊이에서 투명한 빛 빗속에서 순결한 공기의 살결 속에서…. 전후연은 이 세상 보이는 곳에 집을 짓지 않는다”라고 썼다.

전 회장은 1951년 경남 거제에서 11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7세 때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동대문에서 비단 가게와 생선 가게, 과일 가게를 동시에 둘 정도로 넉넉했다. 특히 어머니는 비단에 자수를 잘 놓는 뛰어난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그 유전자 때문일까. 전 회장은 중학교를 다닐 때부터 학교 앞 문방구에서 시화를 그려 팔거나 명동성당 앞에서 크리스마스카드를 손수 그려 번 돈으로 친구들에게 음식을 사주는 등 대장 노릇을 했다.

걸스타인 컬렉션과 전후연 회장의 도판들


그가 캘린더의 비전과 상업성에 눈을 뜬 것은 홍익대 시절 전국대학미전에서 달력이라는 소재로 은상을 받으면서부터다. 1976년에는 프랑스 판화 종이를 최초로 수입해 오프셋 판화로 만든 명품 달력을 탄생시켰다. 1983년 연화랑을 전국 체인으로 설립하며 판화와 액자 사업을 했고 1988년에는 서울올림픽 기념 금·은화 패키지 디자인 기념품 사업에 참여하면서 실력을 인정받았다.

전 회장은 보다 많은 사람이 저렴한 가격으로 원화와 가까운 미술 작품을 접할 방법에 대해 고민을 했다. 그래서 찾았던 것이 예술 작품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캘린더를 만드는 것이었다. 삼성이 주요 인사들에게만 제공하는 고품질 캘린더는 이렇게 탄생했다. 미술 원화의 느낌을 그대로 표현한 이 달력은 25년간 국내외에서 뜨거운 호평을 받았다. 심지어 어떤 이는 천경자 달력을 오려 액자에 넣은 것을 진짜 그림인지 감정해달라고 의뢰할 정도였다. 이뿐 아니라 대통령과 독대해 디자인 주문을 맡은 적도 있다.

연미술의 독자적인 판화 기법은 판화와 캘린더 업계에 큰 화제가 됐다. 앤디 워홀, 앙리 마티스, 마르크 샤갈, 호안 미로 등의 달력과 판화 작품은 물론 겸재 정선, 장승업, 민화 판화, 불화 복원 사업 등 한국적 문화 정체성을 찾는 일과 이슬람문화재단 코란 원본 복제 사업, 루브르박물관 화집 등 세계적 문화 사업에도 참여했다.

전후연 회장이 처음 산 이중섭의 은박지그림


그가 컬렉터의 길로 들어선 것은 23세 때 이중섭의 ‘은박지 그림’과 이인성의 ‘해변풍경’을 구입하면서였다. 100만 원이 조금 넘는 이 그림을 사기 위해 전 회장은 병원을 하던 큰형에게 돈을 빌렸다. 첫 번째 소장품이었던 이중섭의 은박지화가 영원히 형의 것이 된 이유다. 26세 때는 박수근의 8호 작품을 700만 원을 주고 구입했다. 이 역시 돈이 모자라 아내가 직장 생활을 해서 모은 돈을 조건부로 빌려 겨우 살 수 있었다. 이 그림도 결국 부인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그는 천경자·장욱진·이대원·이중섭·박서보·김창렬·김태호·김종학·변종하·유영국 등 내로라하는 유명 작가의 화집과 판화를 만들면서 국내외 작가들의 작품과 판화를 수집할 수 있었다. 때때로 무명 작가의 화집을 만들고 작품을 수십여 점 사준 적도 있었고, 무상으로 판화와 도록 제작을 해준 사례도 적지 않았다.



‘보다 많은 사람에게 아름다움을 전하자’는 게 연미술의 설립 이념이지만 그의 성격은 매우 깐깐했다. 한번은 유명 화가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제작한 화집을 불태우기도 했다. 그는 또한 완벽주의자이기도 했다. 오랫동안 장욱진 화백에게 화구와 물감을 제공했던 전 회장은 장 화백이 그림을 너무 대충 그린다며 실랑이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그는 예술가를 좋아했다. ‘걸레 스님’으로 불리던 중광 스님이 약 6개월간 그의 아틀리에에 머물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

그는 2008년 수많은 중소기업을 도산 위기로 몰아넣었던 ‘키코 사태’에도 그림을 팔지 않았다. 대신 대출로 위기를 넘겼다. 그는 아내와 함께 모든 어려움을 극복하고 모은 수백여 점의 컬렉션(판화까지 포함하면 수천 점)으로 미술관을 만들어 남기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자녀들에게도 이 소장품에 대해서는 신경을 끄라고 했다고 덧붙였다.

전 회장은 “꿈이 사랑이고 사랑이 하나의 작품”이라며 “내가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은 한없이 많고 그 일을 하는 데 내 생이 다할 때까지 다 쓰고 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왈종 컬렉션과 중광사진


전후연 회장의 그림


전 회장은 자신의 작품들을 곧 두꺼운 화집으로 세상에 선보일 예정이다. 요즘은 판화 미술의 감성을 극대화하는 작품을 만드는 데 매진하고 있다. ‘사랑, 꿈, 젊음’을 주제로 한 개인전 화집 출간도 앞두고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미 상하이 아트페어와 판화 그룹전을 열었고 내년에는 싱가포르 아트페어도 계획하고 있다. 전 회장은 아무래도 컬렉션만으로는 성에 안 차는 것 같다.

김종근 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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