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치원부터 초등학교, 중·고등학교 교복과 대학 때 입은 교련복에, 군복까지 걸어두고서 작가는 ‘유니폼들 자화상들 나의 39년 인생’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현대미술가 서도호의 2006년작이다. 일종의 자화상인 이 설치 작품에는 평범한 것 같지만 개성을 옥죈 당시 대한민국의 모습이 스며있다.
#일본 사진작가 사와다 토모코는 졸업앨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학급 단체 사진에 1인 다역으로 등장해 ‘학창시절’ 연작을 선보였다. 똑같은 교복을 입고 앉은 학생들이 머리 모양, 약간의 화장을 달리했을 뿐 자세히 보면 같은 얼굴들이다. 심지어 맨 끝에 서 있는 담임 교사 또한 작가 자신이다. 개성이 함몰된 집단을 보여준다.
교복은 때로 자화상이고 때로는 개성을 억누르는 획일적 수단이 되기도 한다. 미국 뉴욕주립 패션공과대학(Fashion Institution of Technology·FIT)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는 변경희 교수는 유독 동아시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 같은 ‘교복 문화’에 눈길이 갔다. 본래 중세미술을 전공한 변 교수는 미국 프랫대에서 미술사를 가르치다 지난 2013년 FIT로 옮기면서 의복을 통한 디자인 상징물 등으로 관심이 확장됐다. 지난 2018년부터 본격적으로 ‘동아시아 교복에 대한 문화적 해석’을 연구한 변 교수는 지난달부터 풀브라이트재단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서울대에서 국내 시각문화 자료들을 연구 중이다.
“산업혁명의 배경이 바로 노동집약적 직물공업이었고, 유니폼은 19세기에 등장했습니다. 프랑스·프러시아 등의 민족국가는 시민 교육이 국가 부강과 직결된다고 여겼고 군인도, 노동자도 될 수 있는 시민들에게 ‘나라의 부강을 위한 교육’을 제공하면서 유니폼을 도입해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변 교수는 서도호와 사와다 등의 미술작품 뿐만 아니라 1990년대 영화를 사례로 “이문열 소설을 영화화 한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같은 교복을 입은 인물들은 다림질 한 흰 칼라의 말끔한 교복과 낡고 후줄근한 교복을 통해 공동체 내 모범생과 불량배로 ‘달리 보이는’ 이미지로 그려졌고 이는 이후 ‘말죽거리 잔혹사’ 등 다른 영화에도 거듭 발견된다”면서 “교복입은 모습을 순정만화 캐릭터처럼 표현하면서 포르노그라피 경향을 투사한 일탈의 심리, 공포 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교복 입은 등장인물로 표현되는 서브 컬처 등의 사례가 잦다”고 분석했다. 공동체의 표상 같은 교복 속에 켜켜이 자리 잡은 사회 심리를 포착한 셈이다.
서구 유럽과 달리 동아시아의 교복에 주목한 것에 대해 변 교수는 “한국과 대만은 식민지 시대를 거쳤고 일본은 군국주의를 겪었기에 교육받은 엘리트가 은연중에 이 같은 교복 문화에 더 많이 노출됐다”면서 “이를 내재화 하면 어른이 되어서도 획일화 된 문화에 쉽게 적응하고, 일탈 행위에 대한 충격은 더 커지는 경향을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1990년대 교복 자율화 이후 또다시 교복 문화가 지속되는 만큼 ‘다양성 시대’의 교복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면서 “학생다움과 개성 표현의 충돌 뿐만 아니라 남자용, 여자용으로 표준화 된 교복으로 인해 소외되는 성소수자의 권리, 신체적 불편함에 대한 배려까지도 살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변 교수의 연구 논문은 내년 하반기 미국 출판사를 통해 현지 출간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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