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갑부로 억만장자 1위, 3위인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은 60조 원 넘게 기부한 기부왕으로 유명하다. 이들에게 이상적인 본보기는 미국 경제지가 선정한 ‘돈만 아는 억만장자 1위’ 찰스 피니다.
세계 최대 규모의 공항 면세점을 창업하면서 40대에 이미 억만장자가 된 그는 돈만 안다는 비난에도 침묵했다.
그러던 지난 1997년 운영하던 면세점을 매각하는 과정에서 회계장부가 공개되자 미국이 발칵 뒤집혔다. 돈만 아는 그가 15년 동안 무려 4조 5,000억 원, 25년간 무려 2,900회에 달하는 기부를 하고도 사실을 밝히지 않은 것이다.
경남 김해시에 엔스퀘어 사옥 빌딩인 복합 상가가 있는데 이곳이 이병렬 남명건설 회장이 근무하는 사옥이다.
경남 하동에서 태어나 한때 병원에서 근무하다 주택과 상가를 건설하는 사업에 뛰어든 지 올해로 33년에 이르렀다. 남명건설은 수주액 5,000억 원을 예상하는 중견 기업이다. 지난 30년 동안 1997년 IMF 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몇 번의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절대 긍정’과 ‘절대 감사’를 내세우며 “기업이 곧 문화”임을 증명하려 했다.
이 회사의 ‘남명’이라는 이름을 조선 중기의 실천 유학자로 후학을 길러낸 남명 조식 선생에서 따왔다는 사실이 이 회사의 설립 이념을 말해준다.
실제 이 회장은 ㈔경남필하모닉오케스트라 이사장, 경남메세나협회 부회장으로서 기업의 문화 사업 확장에도 앞서고 있다. 딸이 발레를 해서 더욱 문화 예술에 흥미를 느꼈고 친척 중에도 음악을 하는 사람이 있는 예술인 패밀리이다. 이 회장의 발자취에서 우리는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의 참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이 회장의 문화와 예술에 대한 후원은 그 명성이 중앙에도 자자하다.
‘가장 좋은 것은 물과 같다’는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을 가슴에 두고 사업하는 그는 입버릇처럼 ‘기업이 바로 문화다’고 누누이 강조했다. 그런 이 회장의 취미는 토기를 컬렉션하는 것이다. 틈 나는 대로 작가는 물론 화가와 도예가들과 교류하며 술도 사고 밥도 사고, 마음에 드는 작가들을 만나 컬렉션을 살찌웠다. 이 고장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두고 특히 고고학에 많은 흥미를 보인 것이다.
김해 웅촌을 비롯, 도자기나 토기를 만드는 도예촌이 모두 이곳이 발상지인 덕에 그는 토기를 가까이 접할 수 있었다. 이곳에는 막사발은 물론 분청사기도 흔했고, 이 훌륭한 기물들을 모아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이다. 이곳의 도예가들이 일본으로 많이 끌려가기도 했고, 그는 자연스럽게 토기나 달항아리의 소박함과 멋, 그릇에 대해서 하나둘씩 컬렉션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수량도 자꾸 늘어나고 보관 장소도 필요해 사무실을 꾸미면서 따로 수장고를 마련했다. 다 헤아리지는 못했으나 얼핏 500점을 충분히 웃돌았다.
그곳에는 가야토기는 물론 백자 7점, 신라 토기 달항아리, 찻사발 등도 모였다. 모두 감정된 것은 아니어서 모르지만 오래된 장독 200여 점도 우연한 기회에 미술관을 통해 컬렉션했다.
이뿐만이 아니라 소나무 작가 김상원의 작품은 물론 조각가 김경민 등의 입체 작품도 옥상 공원에 설치했다. 이곳 진주에서 활동한 우촌 최태문 작가를 비롯해 지역 작가의 미술 작품도 100여 점에 달한다. 물론 그중 24년 전에 받은 서예가 윤효석 선생님의 작품을 아끼고 제일 좋은 곳에 설치해 애지중지하고 있다. 이외에도 윤판기 선생의 ‘석가정’이라는 서예 작품도 아끼는 비장품이다.
이 회장은 이 소장품들을 회사 내에 소장하면서 귀한 손님들에게 손수 공개하고 있다. 그는 앞으로 그가 본사가 있는 김해나 거제, 그리고 하동에 박물관이든 미술관이든 지방자치단체와 함께 운영해서 이 귀한 예술품들을 시민들과 함께 공유하고 하고 싶다는 희망을 전했다. 특히 지역 문화를 활성화하고 꽃피울 수 있도록 거름을 주고 햇볕을 내리는 일을 이 회장은 ‘소명’이라고 했다.
최근 김해시 엔스퀘어 사옥 빌딩 내 복합 문화 공간에 오페라 콘서트를 할 수 있는 공연장과 갤러리를 만든 것은 이 회장의 소명이다. 문화 예술 불모지 김해 장유에 임대 대신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어 지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발표 터전을 마련하는 것과 구매해주는 일은 결코 돈만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그에게도 마지막 소원이 하나 있다고 한다. IMF 때 친구인 김철수 대산미술관 관장이 어렵다고 찾아와 기꺼이 미술관 리모델링 공사를 해줬는데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해서 이게 다른 것도 더 해달라는 것인지 아리송하고 쑥스러우니 이제 그 일은 그만 떠벌렸으면 좋겠다고 소원을 말했다.
이 회장이 “한꺼번에 두 켤레의 신발을 신을 수 없으니 남는 것은 당연히 기부해야 한다”는 말을 남긴 찰스 피니의 행적을 그림과 도자기로 따를 일만 남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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