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1년 만에 또 다른 비극이 발생했다. 이번엔 서울 강동구에서 3세 남아가 의붓어머니의 학대로 숨졌다. 정인이 사건 이후 아동학대 대응 체계가 대거 개편됐지만 사각지대를 메우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전문가들은 영아일수록 가족과 주로 생활하고 표현 능력이 없는 만큼 학대 피해 징후를 적시에 발견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24일 경찰에 따르면 서울경찰청은 피해 아동 A 군의 의붓어머니 이 모 씨와 친부 B 씨를 각각 아동학대치사와 아동학대방조 혐의로 입건했다. 이 씨는 지난 20일 A 군이 말을 듣지 않는다는 이유로 때려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A 군의 사인이 직장(대장) 파열로 추정된다는 1차 구두 소견을 내놨다. A 군의 신체에는 뇌출혈 및 화상 흔적, 멍 등 지속적·반복적인 학대 흔적이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 아동이 어린이집에 딱 하루 등원하는 등 외부 노출이 적었던 만큼 학대 신고가 접수된 이력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번 사건은 16개월 입양아 정인 양이 지난해 10월 양부모의 학대로 숨지는 사건이 발생한 지 약 1년 만에 발생한 사망 사건이라는 점에서 뼈아프다는 평가다. 아동학대 대응 체계는 정인이 사건을 계기로 크게 강화됐다. 먼저 아동학대처벌법에 아동학대살해죄가 신설돼 사형이나 무기징역 또는 7년 이상 징역에 처하도록 했다. 학대 제지를 위해 경찰이 다른 사람의 토지·건물·차에 출입할 수 있도록 하는 조항을 명문화하는 등 경찰과 전담 공무원의 개입 권한도 늘렸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아동학대는 처벌만이 능사가 아닌데 최근 나온 대책들은 사후 처벌 강화에 초점을 맞춘 측면이 있었다”며 “이 대책들만으로 학대를 예방하기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영아의 학대 징후를 사전에 파악할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영유아 건강검진을 활용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영유아 건강검진은 6세 미만의 아동을 7차례에 걸쳐 신체 검진하도록 하는 제도다. 정 교수는 “어린이집 등원 이전 연령대의 아동은 대부분 가족과 생활하기 때문에 학대를 조기 발견할 수 있는 제도가 꼭 필요하다”며 “영유아 건강검진을 의무화해 미수검 가정을 관리하고 검진 항목에 학대 피해 여부 확인 지표를 포함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지난해 학대로 사망한 아동 43명 중 1세 이하(24개월 미만)는 20명으로 62.8%에 달했다. 일본 역시 아동학대 예방을 영유아 검진의 주요 목표로 내걸고 검진 시 학대 징후를 조사하도록 하고 있다.
정부가 2019년부터 1년에 한 번씩 실시 중인 ‘만 3세 아동 소재·안전 전수조사’의 대상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번 사건의 피해 아동은 2018년생이라 2017년생을 대상으로 실시됐던 지난해 조사 대상에는 포함되지 않았다. 이배근 아동학대예방협회 회장은 “연령을 만 3세 이하까지 확대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충분한 예산 확충이 선행돼야 할 것”이라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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