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확산되고 미국의 조기 금리인상론이 힘을 얻는 가운데 지난 3일(현지 시간) 나타났던 뉴욕증시의 기술주 대량 매도세가 이튿날 암호화폐 시장으로 옮겨붙었다. 하루 사이에 비트코인 가격이 20% 이상 폭락하면서 한때 4만 2,000달러(약 4,970만 원)까지 떨어졌다. 몇 시간 새 벌어진 대폭락으로 외부 요인에 대한 암호화폐 시장의 취약성이 다시 한번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4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투자자들이 증시에서의 대량 매도 이후 위험한 투자에서 손을 떼고 있다”며 비트코인 가격이 이날 오전 중 한때 4만 2,000달러까지 떨어졌다고 보도했다. 이후 한국 시각 5일 오후 3시 기준 4만 9,520달러 선으로 회복됐지만 전날인 금요일 오전 5만 7,000달러 부근에서 거래됐던 것과 비교하면 주말 사이 7,000달러 이상의 대폭락이 발생한 셈이다.
비트코인에 이어 시총이 두 번째로 높은 이더리움은 한때 15% 이상 폭락했다가 상승해 전날 대비 4% 하락에 그쳤다. 다만 솔라나·도지·시바이누 등 상당수 암호화폐는 전체 시총의 20% 이상이 증발하는 등 ‘참사’를 겪었다.
시장은 이번 대폭락을 금리 인상 우려에 따른 투자자들의 위험 기피 현상이 암호화폐 시장에서 극대화된 것으로 해석했다. 최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 속도를 높일 것을 시사하면서 내년 상반기 금리 인상 가능성이 현실화한 상태다. 투자자들은 연준이 2017년과 2018년 금리를 올렸을 때 암호화폐 가격이 대폭락하는 경험을 한 바 있다.
WSJ는 “금리 인상에 대한 우려로 주식시장에서 투자자들이 기술주를 대량 매도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 이 같은 상황이 벌어졌다”고 분석했다. 전날인 3일 나스닥의 우량 기술주인 테슬라가 6.4% 급락했다. 어도비가 8.2% 하락했고 엔비디아와 AMD도 주가가 각각 4.5%, 4.4% 떨어졌다. 블룸버그통신은 최근 몇 주간 암호화폐 시장과 주식시장의 흐름이 높은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고 짚었다.
여기에 찰리 멍거 버크셔헤서웨이 부회장이 “최근 자본시장의 버블은 매우 심각한데 1990년대 후반 닷컴버블 때보다 심한 수준”이라며 “암호화폐 시장의 버블이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한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발언이 나오고 폭락장이 연달아 연출되면서 시장에서는 이번 폭락이 ‘멍거 효과’ 때문이라는 말까지 나왔다. 반면 나이브 부켈레 엘살바도르 대통령은 비트코인이 급락하자 비트코인 150개를 추가로 샀다고 밝히면서 암호화폐 시장의 ‘비공식 중앙은행’ 역할을 하며 가격 방어에 나서기도 했다.
다만 암호화폐의 낙폭이 걷잡을 수 없이 컸던 데는 거래의 큰 부분을 차지하는 파생상품 차입 거래 방식이 한몫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크립토렌더 제네시스 글로벌 트레이딩의 노엘 애치슨 시장분석총괄은 “대량 매도 주문이 마진 콜과 투자자 자동 청산으로 이어지면서 낙폭이 가속화했다”고 짚었다. 세계 최대의 암호화폐거래소인 바이낸스를 비롯해 상당수 거래소가 레버리지를 높인 파생상품 선물 거래를 운영하고 있는데 암호화폐 가격이 가파르게 떨어지면 투자자들이 마진콜(선물계약의 투자원금에 손실이 발생하면 추가 증거금을 납부하라는 요구)에 대응할 새 없이 자동 청산이 벌어지기 쉽다.
암호화폐 시장조사 업체 페어리드스트래터지스 설립자인 케이티 스톡턴은 “암호화폐 파생상품 때문에 더욱 가격이 하락한 것으로 보인다”며 “비트코인과 긍정적 상관관계를 가진 고성장 기술주 약세도 암호화폐에 악재가 됐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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