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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택 그림으로 본 '尹의 철학'…소박한 실험정신·작은 목소리 귀담아

■자택 그림으로 본 尹의 철학

주방 벽면 수백만원대 이강소 판화

"실험미술 선두…붓질로 氣·청명 표현"

안방 옆엔 '장애극복' 김현우 그림

총장 사퇴 이후 전시장 찾아 인연

"소외계층에 큰 관심 줄것으로 기대"

한쪽엔 유교 아이콘 '책가도' 민화도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지난해 5월 김현우(픽셀 킴) 작가의 전시를 관람한 후 작품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윤 당선인은 이 그림을 구입해 자택에 걸어두고 있다. 사진 제공=김현우 작가 가족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지난해 5월 김현우(픽셀킴) 작가의 전시를 직접 관람한 후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을 구입했고 자택 벽에 걸어두고 있다. /사진제공=김현우 작가 가족


한국 실험미술의 선두로 꼽히는 원로 작가 이강소의 1994년 작 석판화 ‘무제-94045’. 장애를 극복하고 화가가 된 김현우(픽셀 킴)의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 조선시대 정조가 문치주의와 실용주의 정치철학을 강조하며 그리게 했고 왕의 상징인 ‘일월오봉도’를 치우고 대신 세우게 했던 ‘책가도 민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집에 걸린 그림들이다. 집에 걸린 그림은 집주인의 취향뿐 아니라 철학과 삶의 태도까지 가늠하게 한다. 미국 백악관이나 프랑스 엘리제궁 등에서는 관저에 걸린 그림을 통해 대통령의 상징적 메시지를 드러내기도 한다. 지난해 방송된 SBS ‘집사부일체’에서 공개된 윤 당선인의 자택 그림들을 통해 집주인의 철학을 엿볼 수 있다.

이강소의 1994년작 석판화 ‘무제-94045’ /사진제공=이강소 스튜디오


SBS '집사부일체'를 통해 공개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자택 내부. 뒤로 보이는 주방 쪽 벽면에 이강소의 1994년작 석판화 ‘무제-94045’가 걸려 있다. /사진출처=SBS


윤 당선인의 집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작품은 거실에서 보이는 주방 쪽 벽면을 차지한 이강소의 추상화 ‘무제-94045’이다. 이강소는 1975년 파리비엔날레에서 흰 가루를 뿌린 멍석 위에 닭을 놓아 그 발자국이 그림처럼 남게 한 ‘닭 퍼포먼스’로 세계를 놀라게 했고 그림이나 조각에 갇혀 있던 예술의 한계를 벗어나 새로운 시도를 지속해 ‘아방가르드’ 미술가로 불린다. 윤 당선인 집에 걸린 작품은 폭 1m의 작품인데 수천만 원에서 수억 원에 거래되는 이강소의 원화가 아닌 판화를 선택했다는 점이 눈길을 끈다. 안목과 취향은 확실하나 공무원 출신답게 고가의 작품 대신 수백만 원대 판화를 구입한 것으로 보인다. 이 작가는 21일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윤 당선인이나 부인 김건희 여사 등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면서 “보통은 원화(原畵)가 있고 판화를 후속 제작하지만 윤 당선인 자택의 작품은 원화가 별도로 존재하지 않고 1994년에 리소그래피(석판화) 기법을 통해 제작한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작가는 “판화 제작 현장에서 실제로 그린 4개 시리즈가 하나의 판화 세트를 이루는데 캔버스나 종이에 그리는 것과는 또 다른 실험적 시도를 할 수 있었다”면서 “그림 속 붓질은 내 의도나 정서를 전혀 투영하지 않은 채 의식에서 벗어난 예상하지 않은 필력으로 보여 주는 기(氣)와 청명(淸明·맑음)이라고 설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자택 현관에서 안방으로 이어지는 벽 쪽에는 윤 당선인이 지난해 5월 직접 전시를 관람하고 구입한 김현우 작가의 작품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이 걸려 있다. 장애를 극복하고 화가가 된 김현우 씨는 '픽셀킴'이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사진출처=SBS 집사부일체




김현우 '바다 모래 수학드로잉' /사진제공=신한갤러리


윤 당선인 자택 현관에서 안방 쪽으로 향하는 벽면을 채운 김현우 작가의 작품인 노랑과 파랑의 원색이 어우러진 그림은 인상적이면서 남다른 사연까지 깃들어 있다. 지난해 5월 20일 윤 당선인은 김 작가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던 서울 강남구 역삼동 신한갤러리를 방문했다. 당시는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갈등 속에 검찰총장 사퇴를 선언한 윤 당선인이 정치 입문을 고민하며 잠행하던 때다. 우연찮게 받은 전시 초대장을 들고 수행비서 한 명과 함께 전시장을 찾은 윤 당선인은 작가·큐레이터와 함께 1시간 가까이 작품 하나하나를 감상했다. 다운증후군을 극복하고 화가가 돼 지난해 열한 번째 개인전을 연 김 작가는 선명하고 밝은 색감의 바탕 위에 수학 공식 혹은 음표를 빼곡히 채워 자신만의 ‘아름다운 세상’을 그려낸다. 김 작가의 어머니는 이날 통화에서 “윤 당선인은 어떤 재료로, 어떤 순서로 작업했는지까지 세심하게 물으며 관람했고 (김 작가는) 누군지도 모르는 채 신나서 작품 설명을 했다”면서 “끝까지 작품 설명을 경청하고 예전에 봤던 다른 작업과 비교하면서 현우(작가)와 대화를 이어 가는 모습이 무척 좋았다”고 말했다. 평소 전시 관람을 자주 즐긴 윤 당선인이 장애인 등 소외 계층의 목소리에도 각별히 귀 기울일 것을 기대할 수 있는 대목이다. 윤 당선인은 며칠 뒤 작가 쪽에 연락해 작품 구입 의사를 전했고 전시 종료 후 자택에 설치했다.

정조의 '문치주의'와 '실용주의' 정치철학이 담긴 책가도는 19세기 후반에 이르러 파란색 뒷배경에 세련된 구성미로 발전했다. /서울경제DB


또 다른 작품으로 민화 ‘책가도’가 눈에 띈다. 정조가 작업을 지시했고 단원 김홍도가 처음 그렸다고 전하는 책가도는 왕실 그림으로 제작됐다가 이후 민간에 퍼지면서 ‘민화’의 대표적 갈래가 됐다. 윤 당선인 집의 책가도는 19세기 후반 왕실 책가도로 제작된 병풍 그림 중 한 폭이거나 같은 도안을 현대 작가가 모사한 것으로 보인다. 민화 전문가인 정병모 경주대 교수는 “책거리(책가도)는 학문과 도덕을 중시하는 유교 국가 조선의 아이콘과도 같은 작품”이라며 “서양의 정물화와는 전혀 다른 한국만의 작품이며 책장과 선반·책이 이루는 직선들의 구성미가 우수하고 현대미술과도 어우러질 정도로 미의식이 돋보여 K아트의 선두 주자로 꼽아도 손색없다”고 말했다. 책가도에는 지식과 교훈을 담은 책과 함께 당시 청나라에서 수입한 신물물, 장수·출세 등을 기원하는 좋은 의미의 물건들이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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