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토피 환자들을 보면 '보통 아픈 사람이구나'하고 한 번 쳐다봐 줬으면 좋겠어요. 두 번 쳐다보지 말고요. 묻지 않으면 '이런게 좋다더라, 이렇게 해봐라' 하는 말도 굳이 하지 않았으면 하고요. "
5일 서울경제와 만난 김소영(62·가명)씨에게는 아토피 피부염을 앓는 막내 아들 서군(23)이 아픈 손가락이다. 김씨는 "태어날 때부터 아토피 피부염을 앓았던 아들을 치료하고 케어하는 데 십수년간 매달렸다"고 털어놨다. 피부과라는 피부과는 다 찾아다니고 미용실을 운영하면서 손님들에게 듣는 작은 정보도 그냥 흘려듣지 않았다는 김씨. '계란을 먹으면 아토피가 심해진다'거나 '열 오르는 음식을 피하는 게 좋다'는 말에 라면, 과자는 일체 없앨 정도로 정도로 음식 조절에도 힘썼다.
김씨는 "아들의 증상이 가장 심해졌던 고등학생 때에는 급식 대신 채식 위주의 도시락을 매일 싸서 학교에 보냈다"며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증상이 심해져 늘 외롭고 죄책감이 컸다"고 회고했다. 김씨가 희망을 갖게 된 건 몇년 전 우연히 중증아토피연합회 카톡방을 알게 되면서다. 김씨는 "그동안은 '우리 아들만큼 심한 사람은 없겠지. 내가 세상에 죄를 많이 지어서 그런가보다'라고 생각했다"며 "중증 아토피 피부염을 앓고 있는 환자들과 증상, 치료 부작용 등에 관한 정보를 나누다보니 많은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생후 2~3개월 때 시작돼 호흡기질환도 동반
아토피 피부염은 소양증(가려움증)과 피부 건조증, 특징적 습진을 주증상으로 동반하는 만성 염증성 피부질환이다. 대개 생후 2~3개월 영유아기에 시작된다. 유아기에는 얼굴과 팔다리가 펴지는 부위의 습진으로 시작되지만, 소아기에 접어들면서 팔이 굽혀지는 부위나 무릎 뒤의 굽혀지는 부위에 습진이 나타난다. 성장하면서 자연히 호전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하지만 알레르기 비염, 천식과 같은 호흡기질환을 동반하는 경우도 많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의 70~80%가량은 아토피 질환의 가족력이 있다. 하지만 이외에도 환경 공해, 식품첨가물, 카펫·침대·소파 사용 증가, 집먼지진드기 등 환경적 요인도 아토피 피부염 발병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아토피 피부염 환자는 전 세계적으로도 증가하는 추세다. 1970년대까지 6세 이하 어린이의 약 3%가 아토피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됐으나 최근에는 어린이의 20%, 성인에서도 1%~3% 가량에서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국내 아토피피부염 환자 수는 98만 3913명에 달했다. 연령별 비율을 살펴보면 10세 미만이 32만 9758명으로 전체 환자의 33.5%를 차지했고, 10대가 16만 4110명(16.7%)으로 뒤를 이어 소아청소년 환자들이 거의 절반을 차지한다.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수면장애·우울증도
아토피피부염은 국내 환자가 100만 명에 육박할 정도로 흔한 피부과 질환 중 하나다. 하지만 중증도에 따라 환자들의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은 천차만별이다. 학계에서는 1993년 유럽 아토피 태스크포스가 제안한 아토피피부염 중증도 지수(SCORAD) 또는 습진 중증도 평가 지수(EASI)에 따라 치료 방침을 정하고 있다. SCORAD 지수 15~39점 또는 EASI 지수 16~22점 사이는 중등증, SCORAD 지수 40점 또는 EASI 지수 23점부터는 중증 아토피피부염으로 분류한다.
중등증~중증 아토피피부염은 증상이 피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반복되는 간지러움으로 인한 습진, 진물 등의 증상이 심해져 정신건강 문제로도 이어질 수 있다. 2016년 미국피부과학회지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중등도~중증 아토피피부염 성인 환자 380명 가운데 55%가 '극심한 가려움증으로 인해 1주일에 5 일 이상 수면장애에 시달리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78.1%가 사회활동 및 여가활동에 영향을 받고 있으며, 57.1%가 인간관계에도 영향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임상적으로 관련있는 불안, 우울 증상을 호소한 환자도 21.8%로 집계됐다.
듀피젠트 보험적용 이어 먹는 신약도 출시
아토피 피부염 치료는 일시적 증상 완화가 아니라 다양한 약리작용을 통해 피부 내 염증을 조절하고 피부 장벽을 강화함으로써 악화를 방지하는 것이 목표다. 경증 환자는 보습제만 잘 도포해도 호전되는 경우가 많다. 국소 스테로이드제나 국소 칼시뉴린저해제와 같이 피부에 바르는 제형의 약물로도 충분한 효과를 볼 수 있다. 하지만 중등증 이상의 환자들은 사이클로스포린을 포함한 면역억제제나 스테로이드, 생물학적 제제와 같은 전신 치료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새로운 기전의 아토피피부염 치료제가 속속 등장해 삶의 질 개선에 도움을 주고 있다. 사노피아벤티스의 '듀피젠트(성분명 듀필루맙)'는 2018년 3월 국소치료제로 증상이 조절되지 않거나 기존 약물 사용이 어려운 중등도~중증 아토피 피부염 환자 치료제로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았다. 듀피젠트는 염증질환의 주요 원인 물질인 인터루킨-4(IL-4)와 인터루킨-13(IL-13)의 신호전달을 억제하는 완전 인간 단일클론항체다. 현재 허가받은 아토피피부염 치료제 중 유일한 생물학적 제제에 해당한다. 임상연구에 따르면 듀피젠트를 투여받은 환자의 91%는 204주차에 EASI 지수가 75% 감소했다. 투여 환자의 80%는 최고 가려움증 점수(PP-NRS)가 3점 이상 낮아졌다. 특히 만 6세 이상 전 연령대에서 수면부족이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났고, 안전성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다. 비싼 가격이 단점으로 지목됐지만 2020년 1월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으며 부담을 덜었다. 2021년 1월부터는 중증 아토피 피부염이 산정특례 대상 질환에 포함돼 듀피젠트 약값 부담이 연간 약 500만∼1200만 원에서 약 200만 원대로 줄었다. 건강보험 산정특례는 진료비 부담이 큰 중증 질환자와 희귀난치성 질환자의 본인 부담률을 경감해주는 제도다. 다만 아토피 피부염 환자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소아청소년 환자는 아직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있다.
류마티스관절염과 같은 자가면역질환 치료에 사용되어 온 야누스 인산화효소(JAK) 저해제 계열 약물도 아토피 피부염 치료제로 사용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JAK 저해제는 체내 염증을 유발하는 사이토카인 생성 경로를 억제해 피부의 염증, 병변, 가려움 등의 증상을 완화한다. 주사제인 듀피젠트와 달리 1일 1회 복용하는 알약 형태여서 편리하다. JAK 저해제인 '올루미언트(성분명 바리시티닙)'와 '린버크(성분명 유파다시티닙)'는 이번달부터 국소치료제에 반응하지 않는 중증 아토피피부염 환자 대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지난달에는 한국화이자제약이 국내에 '시빈코(성분명 아브로시티닙)'를 출시해 선택의 폭이 한층 넓어졌다. 한국화이자제약은 시빈코의 보험급여 신청 절차에 돌입한 상태로 내년 상반기 께 보험적용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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