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앞 세종대로를 마주하고 옆구리에 청계천과 청계광장을 낀 서울파이낸스센터(SFC)는 서울 도심에서도 가장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다. 지상 30층에, 지하 8층 높이여서 광화문 일대 어디에서든 눈에 띄고 지하 1·2층 아케이드는 맛집이 많기로 유명하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 5번 출구로 나오면 큰길 쪽으로 난 SFC의 정문으로 이어진다. 정면을 응시하고 걸어 들어간다면 로비 중앙부에 높다랗게 걸린 모래 그림을 발견할 수 있다. 바닷가 모래밭에서 손을 휘익 저어 그려놓은 듯한, 김창영(65)의 ‘샌드 플레이(Sand Play)’다. 우리말로 옮기자면 ‘모래 장난’.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이뤄진 도심에서 자글거리는 모래를 마주함으로써 느끼는 자연의 기운이 유년의 기억으로 번져간다.
천장 가까이에 걸려 있어 크기를 가늠하기 어려운데 폭 448㎝에 높이가 214㎝이니 내려놓으면 성인 남자의 키보다도 훨씬 더 큰 대작이다. 작가는 실제로 캔버스 위에 모래를 붙였다. 그 위에 정교한 묘사로 모래 놀이의 한때를 그렸다.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느 부분이 진짜 모래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놀라운 ‘눈속임 기법’이다. 이처럼 실제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그리는 기법을 극사실주의 혹은 하이퍼리얼리즘이라고 한다. 감상자들은 “우와, 신기하다”며 감탄하겠지만 작가는 강한 착시 효과를 통해 현실과 허구(환영) 사이의 긴장감을 조성하고자 했다.
눈으로 보는 그림이 손끝에 만져진 듯 촉각적으로 느껴진다. 모래 장난의 손길이 커다란 원을 그린다. 손이 가로지른 모래가 끄트머리에 쌓인 형태가 꼭 파도의 포말처럼 보인다. 언젠가 파도가 밀려와 이 모래를 씻어갈 것을 암시하는 듯하다. 그럼에도 영원히 한결같은 그림인지라 자연에 남긴 인간 흔적의 강렬함을 느끼게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소장품으로 현재 과천관의 ‘시대를 보는 눈:한국 근현대미술전’에서 볼 수 있는 그의 작품 ‘모래작업-951’은 모래 위를 스쳐간 수백 개의 발자국을 담고 있다. 자연 위의 인간, 모래 위의 손짓과 발자국은 이내 흔적 없이 지워질 테지만 작가는 그 허무함에 영원성을 부여했다.
시선을 좀 내려 오른쪽 옆을 보자. 프랑스 출신의 미국 작가 아르망 피에르 페르낭데(1928~2005)의 1988년 작 ‘뮤직 파워(Music Power)’다. 바이올린을 반으로 쪼개 해체한 후 이것들을 차곡차곡 탑처럼 쌓아올린 형상이다. 갈라진 바이올린은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아르망의 바이올린은 소리 그 너머의 음악을 부르짖으며 높은 곳을 향해 치솟는다. 아르망은 1960년대 초 파리를 중심으로 시작된 ‘누보레알리슴’의 대표 작가다. 평론가 피에르 레스타니가 창안한 사조로 ‘신사실주의’로 번역된다. 누보레알리슴의 작가들은 당시 유럽과 미국 화단을 지배하던 추상미술이 현실도피적이라는 점에 불만을 품었다. 이들의 ‘새로운 사실주의’는 현실의 물건과 물질을 직접 작품으로 끌어들이는 방식으로 ‘현실 참여적인 실천’을 주장했다. 아르망은 갤러리를 쓰레기로 꽉 채우는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고 자동차, 피아노, 각종 폐기물 등 문명과 산업사회의 부산물을 지층처럼 착착 쌓아올리기도 했다. 폐품이나 일상 용품을 모으거나 쌓아 작업하는 기법을 ‘아상블라주’라고 한다. 이곳 SFC의 ‘뮤직 파워’도 그중 하나이며 천안 신세계백화점 앞 아라리오 광장에 폐차 차축을 10개씩 100단 높이로 쌓아 제작한 20m 높이의 ‘머나먼 여정’은 아르망 작품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초대형 작업이다.
왼쪽 엘리베이터 출입구 쪽으로 다가가면 90도로 허리를 숙여 ‘폴더 인사’ 하는 세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중국 작가 가오샤오우(46)의 ‘스탠더드 타임스(Standard Times)’. 작품 옆의 친절한 안내문에는 “현대 세계의 분주함 속에서 동양의 전통적 가치인 행복한 조화를 지켜가는 사람들을 상징한다”고 적혀 있다. 가오샤오우는 2000년대 초반 경제성장을 뒷배로 급성장한 중국 현대미술에서 상당히 중요한 작가 중 하나로 꼽힌다. 허리를 깊게 숙이고 얼굴만 치켜든 사람들의 해학적인 표정은 개방과 함께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막 받아들이기 시작한 중국인들을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손을 모은 오른쪽 인물도, 몸통 옆에 손을 붙인 왼쪽 사람도 어정쩡하고 어색하지만 그럼에도 열심히 살아가려는 적극성을 드러낸다. 가오샤오우를 포함해 웨민쥔·장샤오강·팡리쥔 등 팝적인 요소를 품고 있으나 정치사회상을 반영한 중국의 현대미술을 ‘냉소적 사실주의’라고 부른다. 어쨌거나 이 예의 바른 하얀 사람들은 로비를 오가는 사람들에게 친근함과 환대의 몸짓을 보낸다. 가오샤오우의 작품은 흰색과 빨간색이 대표적이며 우리나라는 물론 중화권의 유명 호텔과 대형 식당에서 종종 마주칠 수 있다.
이처럼 SFC의 로비는 현실에서 소재를 끌어왔으나 현실을 초월하는 ‘리얼리즘’으로 가득하다. 그렇다면 한 층 내려간 지하 1층 주 출입구 로비에서 만나는 백남준의 ‘콘솔 페인팅(A Console Painting)’은 메타버스 시대의 리얼리즘이라고 해야 할까. 1989년 작으로 5개의 크고 작은 TV 모니터가 고풍스럽고 화려한 액자에 둘러싸인 작품이다. 액자를 차용하고 제목에 ‘페인팅’을 붙인 백남준의 작품은 매우 희소하다. 하지만 보호를 명분으로 아크릴 박스 속에 작품을 넣어놓아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구석진 자리라 작품 뒷쪽을 보지 못하는 것도 아쉽다.
백남준의 ‘콘솔 페인팅’은 미디어아트가 열어갈 새로운 미술의 가능성을 상징하지만 그렇다고 ‘그림은 죽었다’를 선언한 것은 결코 아니다. 백남준 전문가이자 미술평론가인 이용우 중국 퉁지대 석좌교수(전 광주비엔날레 대표)는 “백남준을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국한해 볼 게 아니라 21세기 정보화 시대를 예견한 인물로 다시 봐야 한다”면서 “빠르게 돌아가는 TV 영상을 통해 이미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그 안에 담긴 우리 시대 기술 만능주의에 대한 비판을 읽어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가장 정제된 듯한 건물이지만 SFC 로비의 그림들은 도시가 꿈꾸는 자연, 일상 속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이상을 속삭인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