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나라 때 인물 곽자의(697~781)는 ‘안사의 난’을 진압한 명장이었고, 슬하에 8남 8녀를 두어 손자까지 100명의 후손을 거느렸으며, 무병장수를 누린 행복한 인생으로 유명하다. 그런 곽자의의 80세 생일잔치 장면을 그린 ‘곽분양행락도’는 보고 즐기는 사람에게도 장수·다산·풍요의 복이 깃들길 바라는 축원의 그림이었기에 명나라 때는 왕이 충신에게 선물하기도 했으며, 17세기 이후 ‘조선의 워너비’로 왕실과 사대부층에서 유행했다. 혼례 같은 잔치 때 사용됐다는 게 가례도감에 기록됐을 정도다.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완성도 높은 ‘곽분양행락도 8폭 병풍’이 미국 시카고미술관 수장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잠들어있었다. 1940년에 미국인 변호사이자 중국 특사 근무 경력이 있는 윌리엄 칼훈(1848~1916)의 미망인이 “한국의 문화재”라며 기증한 유물이다. 이 병풍의 가치를 알아 본 눈 밝은 이는 시카고미술관의 첫 한국미술 전문 큐레이터인 지연수 전 국립고궁박물관 전시홍보과장이었다. 그는 색이 바래고 낡은 병풍의 보존처리를 위해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국외문화재 보존·복원 및 활용 지원 사업’을 두드렸다.
고국으로 돌아와 지난해 8월부터 10개월 간 때 빼고 광 낸 보물급 19세기 조선 병풍 ‘곽분양행락도’가 30일 동작구 정재문화재보존연구소에서 처음 공개됐다. 시카고미술관에 기증된 이후 80년 이상 단 한 번도 공개된 적 없던 유물이다. 미국으로 돌아가면 언제 다시 한국에서 볼 수 있을지 기약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누각 상부를 장식한 금분·의 반짝임, 곽자의 뒤쪽 부채 끝을 장식한 양록(밝은 녹색)의 영롱함이 보존처리 덕분에 되살아났다. 병풍의 왼쪽 두 폭은 바둑 등 사대부의 놀이문화를 담았고, 3·4째 폭에는 자식들에게 둘러싸인 곽자의가 가운데 앉아있다. 5~8폭에는 화려한 누각에서 화장·머리손질·자수·산책 등으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당대 상류층 여성들의 삶이 펼쳐진다. 누각 안 여인의 뒤에 걸린 ‘그림 속 그림’까지 정교할 정도로 섬세한 필치가 돋보인다. 곳곳에 원앙·사슴·물고기·학 등이 등장하는데 모두 쌍을 이루고 있는 게 공통적이다
중국 고사의 인물이라 건축이 중국풍이기는 하나 전형적인 ‘한국식 곽분양행락도’로 보는 이유는 여성들의 비중 때문이다.
지연수 시카고미술관 한국미술 큐레이터는 “중국의 곽분양행락도에서는 곽자의의 부인을 비롯한 여성들이 남성에 비해 아주 작은 크기로 묘사되는 것과 달리 한국식은 대등한 크기를 가진다”면서 “특히 그림의 절반 가량이 여유를 즐기는 여성의 삶을 보여주는 것도 한국식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보존처리를 이끈 박지선 용인대 문화재학과 교수는 “곽분양행락도의 8폭 병풍은 19세기까지의 형태이고 20세기부터는 10폭으로 확대된다”면서 “이 병풍은 1860년 이전에 제작됐고 1880년에 한번 수리를 거쳤는데, 이번 복원과정에 안에서 찾아낸 배접지가 호적문서 같은 19세기 후반의 조선 행정문서를 재활용한 것이었기에 1867년 이후라는 확실한 제작시기를 알아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발견된 배접지는 ‘증산현갑자식남정안’, 즉 1864년 평남 증산현에 사는 남정의 군역을 조사한 서류, 1867년에 작성됐음을 뜻하는 ‘정묘사월군색소식’ 등이 적힌 행정문서를 활용한 것으로 분석됐다.
미국으로 돌아간 이 ‘곽분양행락도’는 시카고미술관이 7월 2일 개막하는 9월 25일까지 한국·중국·일본 유물 4점을 선보이는 ‘친구와 가족 사이에(Among Friends and Family)’ 특별전을 통해 처음 공개 전시된다.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은 지난 2013년 이후 지금까지 총 105점의 국외소재 우리 문화재를 보존처리해 현지로 돌려보냈고, 새단장 한 유물들은 한국의 미를 알리는 데 활용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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