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태생의 미국 미술가 루이스 부르주아(1911~2010)의 대형 청동 ‘거미’ 조각이 지난 14일(현지시간) 스위스 바젤에서 열린 ‘아트바젤’ VIP오픈에서 4000만 달러(약 518억원)에 팔렸다. 19일까지 이어진 이 아트페어의 최고가 기록이자, 블루칩 현대미술가인 부르주아 작품의 최고 거래가다. 높이 3.35m, 지름 약 7m의 이 조각은 지난 2019년 5월 크리스티 경매에서 약 3200만 달러에 낙찰돼 작가의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바 있다. 앞서 2015년에는 같은 버전의 작품이 2816만 달러에 거래됐으니, 블루칩의 꾸준한 가격 상승세에 코로나19로 인한 팬데믹 상황이 가속도를 얹은 형국이다.
호황이냐 거품이냐
외신들도 앞다퉈 보도한 부르주아의 ‘신고가’를 두고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는 최근 발행한 ‘2022년 6월 미술시장 현황보고서’를 통해 미술투자자들의 “신중한 접근”을 당부했다. 보고서는 부르주아의 작품 판매 사례를 지목하며 “뉴욕의 5월 경매 성황에 이어 아트 바젤의 주목할 결과 등 미술시장은 투자자들에게 연일 호황의 꿈을 보여주고 있는 반면, 금융시장은 하락추세이고 국가마다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금리를 올리고 있다”면서 “미술시장 호황의 최근 수혜자들이 다가올 급격한 침체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을 위험이 있는 만큼 불안정한 투기성 시장 흐름에서 빠져나와 안정적인 올바른 투자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센터 측은 “인플레이션과 금리가 상승하는 상황에서 물가 상승이 미술품 가격을 끌어올리는 모순된 양상”을 지적하며 “국내 메이저 경매에서 지난해 회당 평균 출품작 수는 약 167점이었으나, 올 상반기의 평균치는 약 126점으로 24.5% 감소해 거래량 둔화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렇다고 당장 시장이 침체한다는 것은 아니다. 보고서는 “국내 미술시장 호황이 지속될 것이라는 기대는 여전하다”면서 “특히 오는 9월 예정된 ‘프리즈 서울’은 그 정점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투자와 투기를 구분하라
미술시장의 ‘거품꺼짐’을 대비하려면 투기와 투자를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어떤 이들은 미술품을 ‘안전자산’으로 분류하지만, 또 다른 이들은 미술품을 ‘투기자산’으로 본다. 부르주아와 같은 블루칩 작가를 위시해 ‘미술사적으로 검증된 안정적 작가군’은 안전자산으로 분류할 수 있다. 작품의 가치가 이미 확인됐고, 희소성 때문에 꾸준히 작품값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반면 미술관 등 기관의 검증이나 미술사적 가치 부여가 되지 않은 신진작가군, 미술시장 호황기 때 유독 거래량이 많은 소위 ‘투자형 미술품’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High Risk High Return)’이다. 드라마틱한 가격 상승을 보이지만 불황기의 초입에 급격한 하락세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이에 대해 보고서는 “대호황 시작 이후, 새로운 자금이 NFT와 신흥 예술과 같은 미술 시장의 가장 투기적인 분야로 쏟아져 들어왔고,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검증되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들이 경매에서 수백만 달러에 팔리고 있다”면서 “지난해 해외 미술품 경매시장 총액 163억 달러 중 1974년 이후 출생작가를 칭하는 ‘초현대미술’이 차지하는 비중은 7억 4220만 달러로 2020년에 비해 두 배 가까이(190%) 증가했다”고 꼬집었다.
한 경매회사의 고위 관계자는 “호황세가 영원할 수는 없고, 다만 경착륙이나 연착륙이냐가 관건”이라며 “당장 이달 말 런던에서 소더비·크리스티·필립스 등 세계 3대 경매회사의 대규모 경매가 진행하는데 아마도 이것이 시장 유동성에 대한 첫 번째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상훈 서울대 경영대학장은 “투자 측면에서 경기위축으로 미술시장을 포함한 대체자산의 일시적 타격은 불가피하다”면서도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미술투자에 대한 관심 증대가 장기적으로 시장 회복력(resilience)을 높여 연착륙 내지는 반등의 가능성을 높여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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