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그랬어요. 난 마음먹은 건 다 해요.”
허영심일까 자신감일까. ‘다른 사람이 보는 나’에 집착한 나머지 남의 인생을 빼앗아 사는 마음까지 먹어버렸다.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았고 걷잡을 수 없게 됐다. 쿠팡플레이 시리즈 ‘안나’(감독 이주영)의 이야기다.
작은 양복점을 하는 아버지와 장애가 있는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유미(수지)는 영민하고 예쁜 아이다. 가난한 부모님의 자랑이자 전부고, 유미도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에 익숙하다. 그런 유미가 남교사와 비밀 연애를 하다 발각되고 배신까지 당하면서 인생 첫 좌절에 빠진다. 도망치듯 수능 4개월을 남겨두고 홀로 이사를 가고, 부모님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명문대에 합격했다고 거짓말을 한다.
유미의 거짓말은 거짓말을 낳았다. 부모님 몰래 재수학원에 등록해 다음 해 합격할 생각이었지만, 하숙집 선배의 오해로 인해 대학생인 척 살아간다. 가짜 대학 생활을 하며 만난 남자친구에게도 거짓말을 이어간다.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유미는 현실에 집중하며 살아간다. 새롭게 얻은 일자리의 상사 현주(정은채)를 만나기 전까진. 유미는 팍팍한 삶을 살아가는 자신과는 다르게 부모님의 배경으로 쉽게 사는 현주를 보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다. 쌓여있던 것이 폭발한 유미는 현주의 학력증명서, 돈과 여권 등을 갖고 달아난다. 그렇게 현주의 영어 이름 안나로 개명해 가짜 안나의 삶을 살아간다. 안나의 이름과 배경으로 결혼도 하고, 대학교수 자리도 얻는 등 통째로 인생이 바뀐다.
유미가 안나가 되기로 마음먹은 건 순간적인 충동이 아니다. 내재돼 있는 인정 욕구가 그를 그렇게 인도했다. 유미는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도 빛나는 아이였다. 재능도 충분하고 욕심도 있었다. 어린 시절 우연히 양복점을 찾은 미군 장교 아내의 눈에 띄어 영어도, 피아노도 금방 익히기도 하고, 자존심을 건드리는 친구의 콧대를 꺾어주기 위해 마음먹고 콩쿠르에서 트로피를 타기도 했다. 전교 1등을 할 정도로 성적도 우수했다. 항상 유미의 주위에는 부러운 시선이 있었다. 그도 그런 시선을 즐겼다. “아름다운 게 좋다”는 것만으로 허황되게 미대를 꿈꿀 정도로 허영심도 있었다.
유미의 거짓말은 범죄다. 사회적으로 절대 용인될 수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쉽게 유미를 비난할 수 없다. 범죄에 타당성을 부여하면 안 되지만 꼬일 대로 꼬여버린 유미의 기구의 삶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그래서 시청자들은 유미에게 몰입하게 된다. 남들에게 보이는 모습을 포기할 수 없는 유미에게 공감하기도 한다.
‘안나’에 빠져드는 포인트 중 하나는 단독 주연으로 우뚝 선 수지다. 전에 볼 수 없던 묵직함이 생겨 ‘인생 캐릭터’라는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10대 후반부터 30대 후반의 모습을 표현한 수지는 희망 없어 보이는 초췌한 모습의 유미, 화려하고 언변이 늘어가는 안나를 적절하게 그려냈다. 아버지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눈물 연기는 감정 이입을 유발한다. 반면 비주얼 변화와 다르게 말투나 톤의 변화가 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은 아쉽다. 거짓말로 모든 것을 갖게 된 유미가 진짜 안나가 되어 갈 모습은 아직 많이 남았기에 더 극적인 변화를 기대해 볼 만하다.
‘안나’는 더 극적인 전개를 이어갈 예정이다. 1~2회가 빠른 전개로 몰입도를 높이고 유미의 서사에 집중했다면, 남은 4회에서는 유미가 안나의 삶을 지속할 수 있을지, 어떤 선택을 할지를 그린다. 특히 2회 결말에서 유미가 우연히 현주를 만나 정체를 들킬 위기에 빠져 궁금증을 한껏 높였다.
◆ 시식평 - 유미가 찾는 행복, 안나에게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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