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에 2022 월드컵이 열리는 카타르는 지금 개최 준비로 눈코 뜰 새 없지만 이참에 문화 선진국으로 환골탈태할 각오로 많은 문화예술 프로그램과 공공 미술 프로젝트를 추진하면서 ‘순간을 영원으로’ 남기려 한다. 우리도 이미 34년 전 20세기 문화사에 남을 유적을 만든 바 있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을 바꿔 놓은 88올림픽을 기념하려 조성된 올림픽공원이 그것이다. 공원은 단순한 시민의 휴식과 녹지 공간이 아닌 ‘올림픽 조각공원’을 품은 야외 미술관, 열린 미술관이라는 점에서 역사적·문화적·예술적 의미가 크다.
당시 정권과 올림픽위원회의 과시 또는 몽촌토성을 훼손한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대기업이 협찬한 60억 원의 예산으로 약 76만 ㎡(21만 평)의 부지에 조형물 8점을 포함해 1·2차 국제야외조각 심포지엄에 32개국 36명의 작가가 현장에서 제작한 작품과 66개국 155명의 국제야외조각전 출품작, 그리고 1998년 올림픽 개최 10주년 기념 심포지엄으로 추가된 12점 등 총 221점의 현대 조각이 설치된 20세기 말 전 인류의 예술적 총량이 모인 문화예술 역사 공간이다.
하지만 ‘잊힌 자’는 ‘죽은 자’보다 ‘더 불쌍한 존재’라 했던가. 지금은 ‘조각’은 사라지고 올림픽공원만 남았고 공연장으로 인식되며 수목은 자라 조각을 가리고 풍해에 훼손되는 상태다. 앞으로 20년 후면 세계문화유산이 될 올림픽조각공원은 왜 찬밥 신세가 되었을까. 만들 때는 열심이지만 가꾸고 지키는 데는 소홀한 탓도 있지만 실은 총 144만 ㎡(43만여 평)의 올림픽공원 중 몽촌토성은 서울시, 하천 부지는 송파구, 그 외 약 100만 ㎡(33만 평)는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소유로 실질적 관리책임은 국민체육진흥공단(이하 공단)이 나누어 맡고 있기 때문이지만 더 큰 문제는 ‘체육진흥’이 주 임무인 공단이 조각공원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사실 조각공원의 역사·문화·예술적 가치를 아는 국내외 인사들은 1990년부터 줄곧 전문 미술관 건립을 주장해왔다. 이후 훼손·보존·관리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미술관 건립은 추진됐고 1997년 관리 부실로 당시 김영수 문체부 장관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이관을 추진했으나 공단과 체육계는 1998년 전문적인 관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올림픽회관 로비에 미술관을 개관하는 꼼수로 이를 피했다.
이후 조각공원도 벅찬 공단은 2004년 소마미술관을 개관해 일을 키웠고 조각공원은 ‘콩쥐’가 되었다. 미술관은 일개 기념사업팀에 소속돼 5명 남짓한 학예직을 포함, 11명이 미술관 전시 업무와 21만 평의 조각공원을 관리한다. 연간 예산은 15억 원 남짓인데 조각공원 예산은 1억 7500만 원에 담당 인력은 1명에 불과하다. 2024년 공단이 국립체육박물관을 개관하면 조각공원은 찬밥이 아닌 쉰밥이 될 형편이다. 올림픽조각공원을 국립조각미술관으로 개편해 독립시켜야 한다. 공단도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전념해 공공기관 몸집 줄이기에 나서야 한다. 20세기 세계인의 예술적 역량이 결집된 올림픽 조각공원을 세계문화유산으로 가꾸어 등재해 보도록 하자.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맡기라 하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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