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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용접사도 손에 쥔건 年 3000만원…하청직의 눈물

[노동시장 이중구조 깨자]

<상> 불공정 늪에 빠진 고용시장

7년전 소득보다 31%나 줄어들어

원청 평균연봉은 6700만원 달해

정규직-비정규직差도 갈수록 ↑

비정규직 노조가입률 0.7% 불과

勞는 대기업·공공 목소리만 대변

고용 경직성 등 '개혁' 추진해야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달 19일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에서 농성 중인 유최안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부지회장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거제=연합뉴스


대우조선해양 1도크 하청 업체에서 일하는 선박 가용접원 A 씨는 올해로 경력 15년의 베테랑이다. 서른 살에 처음 조선소를 찾은 A 씨는 용접일로 청춘을 보냈고 용접으로 가족 생계를 책임지는 중년 가장이 됐다. 조선업이 호황이던 2014년 A 씨의 1년 소득은 4974만 원으로 남 부럽지 않았다. 당시 근로자 평균 연봉 3480만 원보다 1500만 원이 많았다. A 씨가 하청이 아닌 원청에 다녔다면 지금 연봉은 두 배쯤 더 올랐을 가능성이 높다. 노조가 있는 대기업이었다면 인상 폭이 훨씬 더 컸을 수도 있다. 하지만 A 씨의 지난해 연 소득은 3429만 원으로 7년 만에 31%나 줄었다. 그나마 세금과 4대 보험료를 공제하면 A 씨의 연 소득은 3000만 원대 초반이다. 김형수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은 7월 국회에서 열린 하청 근로자 실태 좌담회에서 “A 씨는 그나마 시급이 1만 원대로 조선소에서 고임금을 받고 있다”며 “조선소에서는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더 많다”고 밝혔다.

A 씨의 상황은 한국 노동시장의 뿌리 깊은 이중구조의 현주소를 잘 보여준다. 원청이 아닌 하청, 정규직이 아닌 비정규직, 대기업이 아닌 중소기업에서 일하기 때문에 같은 일을 해도 임금이 턱없이 낮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모두 불공정하다고 성토하지만 바뀌지 않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 파업 사태를 놓고 언젠가 터질 게 터졌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17일 서울경제는 A 씨가 정상적으로 수입이 늘었다면 현재 어느 수준을 벌어야 하는지 추정했다. 고용노동부의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2014년 상용 1인 이상 사업체에 근무하는 근로자의 1년 임금은 3480만 원이다. 지난해에는 27% 오른 4428만 원이다. 다단계 하청 구조 등 다른 변수를 제외하고 2014년 A 씨의 연 소득 4974만 원이 동일하게 27% 올랐다면 지난해에는 6317만 원이 돼야 한다.

물론 A 씨의 임금 삭감에는 조선 업종 장기 불황이 큰 영향을 미쳤다. 문제는 호황과 불황 등 경기 사이클에 관계없이 어떤 고용 형태인가에 따라 임금 차이가 고정화된 상태로 좁혀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A 씨가 속한 하청의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지난해 임직원 평균 연봉은 6700만 원이다. A 씨의 지난해 수입 3429만 원의 두 배에 가깝다.



비정규직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고용부가 매년 6월 발표하는 고용 형태별 근로 실태 조사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 차이를 잘 보여준다. 정규직의 시간당 임금 수준을 100%로 보면 비정규직 임금은 2017년 69.3%에 그쳤다. 지난해에도 72.9%로 나타나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2년간 코로나19 사태로 저임금 노동자가 노동시장에서 이탈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실제는 이 수치가 더 낮을 것이라는 비관적인 전망이 많다. 지난해 비정규직은 806만 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38%에 달한다. 근로자 10명 중 4명꼴로 불공정임금의 굴레에 빠져 있는 셈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는 두 계층의 이동이 해외에 비해 어렵다는 특징이 있다. 장근호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이 2018년 발표한 고용시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임시직(비정규직)의 3년 후 정규직 전환율은 22%에 불과했다. 당시 조사 대상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16개국 중 꼴찌다. 산업 구조적으로 대기업이 원청 역할을 하고 하청과 외주화(해외법인 포함)로 생산을 하는 게 보편화됐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이·전직을 가능하게 하는 노동 유연성도 낮다. 노동 제반법과 제도가 기업보다 노동권을 중시하다 보니 능력 평가에 따른 해고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게 경영계의 불만이다.

비정규직에게는 근로자 처우 개선을 위한 노동조합 활동도 퇴직 후 노후 준비도 남의 나라 일이다. 2021년 기준 노조 가입률을 보면 정규직은 13.1%인 반면 비정규직은 1%도 안 되는 0.7%에 불과하다. 대기업과 공공에 치우친 노조 지형이 노동시장 양극화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배경이다. 정규직이 50.5%인 퇴직연금 가입률도 비정규직은 절반인 24.6%에 머물렀다. 격차는 기업 규모에 따라 더 커진다.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의 정규직 임금을 100%로 보면 300인 미만 기업의 비정규직 임금은 45.6%에 그친다. 2017년부터 40%선에 갇혀 있다. 국내 기업의 99%가 중소기업이라는 점에서 이중구조가 사실상 노동시장의 뼈대인 것이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고용 시장과 산업구조 변화, 고령화 때문에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더욱 두드러졌다는 해석도 내놓는다. 과거처럼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만 원하는 게 아니라 시간제라도 쉴 수 있는 일자리를 선호하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것이다. 플랫폼 근로자와 같은 다양한 고용 형태가 등장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양극화 해소는 기대할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 큰 우려는 대우조선해양 하청 업체 파업 사태에서 표출된 갈등과 비슷한 노사 갈등, 노노 갈등이 산업 현장 곳곳에서 반복적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게다가 한국은 고용 경직성이 해외에 비해 심하고 노사 관계의 대립적 성격도 짙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정규직이 비정규직에 이익 분배를 더 많이 하라는 선의만 기대하기 어렵다. 최근 양극화를 걱정한 한 정부 고위 관계자가 기업에 임금 인상 폭을 낮추라는 황당한 당부를 했다가 비판을 받은 배경이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은 10일 정보기술(IT) 기업들과의 간담회에서 “이중구조는 조선업뿐만 아니라 노동시장 전체의 해묵은 과제”라며 “정부는 지속 가능하고 공정한 노동시장을 만들기 위해 노동 개혁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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