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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살리고 가격은 반값…'못난이 상품'에 주문 몰리네 [지구용 리포트]

■'B급 상품' 판매 플랫폼 인기

노프, 친환경 B급 엄선해 싸게 공급

입소문 타고 판매건수 30배로 뛰어

어글리어스는 흠집난 채소 등 선별

버려질 농산물 30톤 '정기구독' 판매

자원낭비 줄이고 가치소비에도 기여


어떤 공장에서든 ‘불량품’이 나오기 마련이다. 제대로 잘리지 않았든, 흠집이 생겼든 불량으로 분류되면 버려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농산물도 마찬가지다. 마트 진열대에 놓인 탐스러운 야채와 과일은 ‘못난이 농산물’을 추려낸 결과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해마다 전 세계 농산물 3분의 1(약 13억 톤 규모)이 수확 직후 버려진다. 크기가 너무 작거나 커서, 울퉁불퉁해서, 살짝 흠집이 있어서다. 성능이나 품질이 멀쩡한데도 미관상의 이유로 물건이 버려지는 시대다.

이처럼 폐기될 위기의 B급 제품에 주목한 사업 모델이 빠르게 부상하고 있다. 원료·에너지 낭비와 환경오염을 막자는 취지다. 노프(NOFF)는 다양한 브랜드의 B급 제품을 모아 저렴하게 판매하는 ‘긴급 구출 플랫폼’이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구출 수량(판매 건수)이 제품당 30~40개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1000개까지 급증했다. 미세한 주름이 생긴 가방, 정석대로 잘리지 않은 샴푸바 등 자잘한 불량으로 폐기돼버릴 제품들을 반값으로 구입할 수 있다는 입소문이 퍼진 덕이다.

노프에서 판매한 절단면이 고르지 않은 비누. 사진 제공=노프




노프에서 판매한 포장재가 손상된 제품. 사진 제공=노프


단순한 B급 제품 판매에 그치지 않고 브랜드·제품 선정 단계부터 친환경 여부를 따진다는 점이 노프의 또 다른 강점이다. 동물 착취 없이 만들어진 비건 가죽 가방, 플라스틱 포장재가 없는 고체 치약이나 샴푸바, 설거지용 천연 수세미 등 비건·제로웨이스트 제품만 판매한다. 김기훈 노프 대표는 “친환경 콘텐츠를 제작하다 수익 모델을 고민하게 됐고 ‘B급 상품 구출’이라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며 “B급 제품 판매로 인한 브랜드 이미지 훼손을 우려하는 기업도 있지만 환경과 가치 소비를 중시하는 노프의 소비자들에게는 오히려 친환경 브랜드를 새로 발견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노프가 공산품에 집중한다면 ‘어글리어스’는 못난이 농산물 구출을 목표로 하는 서비스다. 농부들로부터 수확 2~7일 이내의 못난이 농산물을 공급받아 정기 배송한다. 가공 업체는 가공이 쉬운 크기를, 마트에서는 일정한 중량을, 소비자들은 반점이나 흠집이 없는 완벽한 농산물을 원하기 때문에 그저 곁가지에 쓸려 상처가 났을 뿐인데도 폐기될 상황에 처한다. 버려진 농산물을 땅에 매립하면 썩는 동안 메탄이 발생해 지구온난화를 부추긴다. 이를 막기 위해 ‘정기 구독’을 택한 어글리어스의 소비자들은 못난이 농산물 7~10종을 주 1회 배송받는다. 모두 무농약·유기농인 데다 산지 직거래라 시세 대비 20%가량 저렴하며 알러지가 있어 못 먹는 농산물은 제외할 수 있다. 푸짐하지 않을 정도의 양을 박스에 담고 그 주의 채소로 만들 수 있는 요리 레시피를 동봉하는 이유는 냉장고에 방치되다 버려지는 일을 막기 위해서다. 정기 구독 없이 단품으로도 구매할 수 있다. 어글리어스는 현재까지 30.2톤가량의 못난이 농산물을 구해냈다.



다섯 개의 파프리카 중 ‘못난이’로 분류되는 것은 몇 개일까. 정답은 ‘전부’다. 표준적인 크기·모양과 조금만 어긋나도 폐기된다. 서울경제DB


이밖에 ‘예스어스’도 어글리어스와 함께 못난이 농산물 구출에 기여한다. 농부들로부터 20% 비싸게 사서 소비자들에게 20% 저렴하게 판다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있다. 이러한 못난이 농산물 구출 플랫폼들은 국내산 농산물을 판매하기 때문에 선박·비행기에 실려오는 수입 농산물보다 탄소 배출이 적다는 이점도 있다.

B급 제품과 못난이 농산물에 관심을 갖다 보면 모든 지구인이 소비하고도 남을 만큼 과하게 생산이 이뤄지는 시스템에도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 덕분에 우리의 삶은 훨씬 풍요로워졌지만 그만큼 자원 소비와 환경오염이 늘었다. 경제인류학자인 제이슨 히켈은 저서 ‘적을수록 풍요롭다’에서 소비 위주의 경제성장으로부터 벗어나야 인류가 생존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소비를 줄이고 소비를 자극하는 광고를 감소시켜야 하며 물건을 소유하는 대신 공유하는 ‘탈성장의 시대’가 올 것이라는 예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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